생각해보자. 우리는 아침에 집을 나서며 만반의 준비를 한다.

휴대폰은 충분히 충전했나? 내 생활의 활력소 MP3 건전도 충분히 충전했고? 자자, 내 노트북 건전지도 만땅 충전했겠다. 오~ 이런, 디카 건전지는 간당간당하네! 다행히, 캠코더 건전지는 빠방 하고… 이렇게 우리는 디지털 기기 밥 주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정작 우리 힘이 다 빠지거나 기분이 다운되었을 때, 충전하는 법은 알고 있나? 길거리를 가다가 한 광고문을 본다. ‘충전방/ 기력이 없는 사람 급속 충전. 일상에 찌든 사람은 물론, 사업이나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빠방 하게 원기 회복시켜 드림!”
튀어나온 두 개의 단자 위에 발을 올려놓는다. 그러자 머리 위에는 빨간불이 들어온다. 아… 내가 이렇게 지쳐 있었구나. 얼마가 지나야 저 빨간 불이 녹색 불이 될까? 도대체 얼마나. 하루하루 충전이 필요한 건, 바로 우리가 아닐까! 어디, 사람을 위한 충전기를 파는 곳은 없나!”

 

2002년 6월 – 어느 상상을 담은 매거진 기고 글 –

돌이켜보니 약 15년 전의 글이다.

대학생 때였다. 이제 막 ‘디지털’이란 화두가 떠오르던 그때. 아날로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던 그 과도기. 어느 한 회사가 젊은이들의 ‘상상’을 모집했다. 그 모집 공고를 보고 기고하여 채택되었던 글.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 이 순간이 이럴 거라곤 상상도 못 하였다. 내가 상상한 세상은 좀 더 나은, 그리고 뭔가 생각지도 못한 것과 마주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나 보다. 실상은 어찌나 똑같은지. 그 때나 지금이나 그리 많이 달라진 게 없다. 우리는 여전히 디지털 기기 밥 주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삶은 그것들로 인해 더욱더 풍성해지고 나아졌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그것들의 노예가 되었을지언정.

이 글을 컴퓨터 디스크에서 우연히 발견했을 때, 난 다시 내 생활을 돌아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전동 칫솔을 사용하고, 전동 면도기를 사용하고. 휴대폰은 기본이고, 이제는 그것을 위한 보조 배터리까지 충전하고 있다. 노트북에 태블릿, 블루투스 스피커, 휴대용 키보드. 팔에 차는 스마트 시계까지. 세월이 지나 각각의 배터리의 용량은 늘었는데, 충전은 더더욱 자주 챙겨야 하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배터리의 용량이 15년 전보다 훨씬 커졌는데, 그 옛날보다 배터리가 오래가지 못한 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는 할 일이 많아졌다는 걸 말한다. ‘디지털’이 예전엔 여가 생활을 돕는 보조 도구였지만, 이제는 그것을 넘어 생활 자체가 되었다. 휴대폰 하나로 우리는 사랑도 고백하고, 은행 업무도 보고, TV도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회사 업무도 하며, 택시를 부르기도 한다. 할 수 있는 게 많아졌지만, 뭔가 감흥이 없다.

15년 전과 똑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떠한가. 디지털 기기를 충전하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보고 있는가. 충전하고 있는가. 우리를 위한 보조 배터리는 있는가. 그러고 보면 그것들을 충전하는 모습에, 모시고 사는 것이 연상되어 그저 애처롭다. 20% 남은 배터리 용량에 벌벌 떠는. 전기 콘센트를 발견한 것이 어느 노다지를 발견한 것마냥.

잠시만 자신을 돌아보자. 나는 어떻게 충전해야 하는지. 배터리는 얼마나 남았는지.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자신만의 배터리가 얼마나 남았을 거 같냐는 질문을 해보자. 100% 꽉 차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삶이 팍팍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안쓰럽기 때문이다. 물론, 저마다 자신을 알게 모르게 충전하는 방법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또 어떤 이들은 혼자 조용히 책을 읽을 것이다. 다른 이는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즐기고, 어떤 이는 자전거를 들쳐 매고 뛰쳐나갈 것이다.

‘충전’은 ‘소비’를 전제로 한다. 디지털 기기도 충전을 하며 전기를 ‘소비’한다. 우리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충전’하기 위해서는 ‘소비’를 해야 한다. 주로 소비되는 것들은 ‘시간’과 ‘비용’이다. 술을 마시기 위해, 책과 자전거 그리고 영화 등은 모두 이것들을 소비한다. 그렇다고 ‘소비’하는 모든 것이 ‘충전’을 보장 하진 않는다. 집에 들어와 피곤한 몸으로 인터넷 뉴스나 뒤적거리다 잠들면, 시간은 ‘소비’ 했으되 다음날은 더 피곤하다. 스트레스를 핑계로 밤늦게 ‘소비’한 음식은, 다음 날 후회와 불어난 몸무게로 돌아온다. 충전이 아니라 오히려 더 방전되는 순간이다.

또 하나 돌아볼 것은,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스마트 해져야 한다.

스마트 기기를 충전하는 것이 ‘스마트’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이게 다 먹고살기 위한 일이라고 부르짖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충전하는 이 모든 행위가 더 ‘스마트’해지기 위한 것이라 할지 모른다. 더 스마트 해졌는지 아닌지는 차치하더라도, 역설적으로 뭔가 더 여유가 없어지고 있는 우리다. ‘스마트’함은 결국 편리함과 여유를 위한 일인데도 말이다. 주객 전도가 되는 일들은 이렇게 우리네 인생에 비일비재하다.

‘충전’을 위한 소비와 그렇지 않은 ‘소비’를 구분해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충전’이라는 정의도 각자에게 달려 있다. 어떤 이는 몸이 부서져라 운동하는 것이 충전인데 반해, 어떤 이에겐 고되고 고된 방전일 수도 있으니. 세상엔 여러 신이 있는데, TV 드라마에 나오는 어느 한 신이 말했다. “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일 뿐,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 ‘충전’을 해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운명이라면  그 답은, 즉 어떻게 소비하고 충전할 것인지는 우리 각자가 찾아야 한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떠받들듯이 충전을 해줘야 하는 것들에 대한 얄미움과, 15년 전 그 상황이 너무나 그대로여서, 내가 던진 질문에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억울함에 이렇게 글을 한 번 써 본다. 무언가를 충전할 때, 잠시라도 우리를,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면 이 글의 소명은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이 글을 읽은 보람이 있다.

– 스테르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