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빨리 변한다, 이 시대. 얼마나 빠르냐면 고작 반세기도 못 겪어본 삶인데, 유년과 성년 사이 아주 다른 세상이 된 것 같더라.

인류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고 모든 세대가 그 나름의 격세지감 속에서 살아왔을 테다. 그래도 1차와 2차, 3차 산업 혁명 사이에는 각각 한 세기 가량 기간이 있었는데 이번엔 좀 숨차다. 4차 산업 혁명을 눈 앞에 둔, 어쩌면 이미 시작되어서 3.5차 정도는 접어든 것 같은 요즘이다.

혁명이란 단어는 가볍게 쓰이지 않는다. 하물며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산업’이란 카테고리 앞에 붙을 때엔 더 그렇다. 세상을 송두리 채 흔들만한 변화이기에 혁명이라 부른다. 핵심가치들이 이동하고 근본이 달라진다. 따라서, 혁명의 경계에 걸친 생을 살아야 하는 이들은 필사적으로 적응해야 한다. 다행히, 3차와 4차는 정보통신기술을 중심에 둔 변화라는 점에서 적응이 수월할 수도 있다. 젊은이들에겐 그렇다. 하지만 1970년대 이전에 태어난 장년과 노년층들에겐 따라잡기 버거운 변화겠다. 2차 산업혁명 말에 태어나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보통 헷갈리는 일이 아닐 것 같다.

고작 30여년 사이 내가 사용해 온 정보통신 서비스만 해도 다채롭다. 공중전화 연락방 서비스에 개인 사서함을 개설해놓고 메시지를 주고받던 방식부터 삐삐와 시티폰을 거쳐 2G부터 5G까지. 012부터 016과 017도 써봤고 011을 오래 고집하다 강제로 010을 부여받았다. 모토로라 스타택을 목에 걸고 다녔었고, 이후 스카이 신봉자였다가 지금은 애플의 노예가 되었다. 그 훨씬 전에는 펜팔 북을 서점에서 구매해 매 달 수십 통의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내가 누군지 알려줄게, 백문백답! 따위를 꼼꼼히 작성해 얼굴 모를 여자아이에게 부치고는 홀로 애간장이 타 얼굴이 벌게지곤 했었다. 그 질문들 중 취미 란에 곧잘 ‘신문스크랩’이라고 적어 넣었더랬다. 제 딴에는 담뿍 교양 넘치는 취미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스크랩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공유하기] 버튼 같은 걸 먼저 떠올렸다면 훌륭히 현시대에 적응을 마친 사람이라 해도 좋겠다.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그놈의 ‘클리어화일’이 먼저 떠오른다. 플라스틱 커버 파일 속 비닐 속지에 직접 오린 신문 기사들을 한 장 한 장 끼워 스크랩을 했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카테고리별로 권을 나누어 라벨지를 붙였다. 몇 년 그렇게 하자 스크랩화일 보관을 위해 별도로 책장을 구매해야 했을 만큼 분량이 늘었다. 그게 다 재산이고 보물처럼 느껴졌다. 정보가 귀했던 시절, 경쟁력이란 그렇게 공간을 차지하는 실물의 축적으로 존재했다. 도서관을 뒤져 겨우 고급 정보 한 줄을 찾으면 하루치 수고를 다 보답 받는 기분이었다. 국내 발매되지 않는 외국 잡지 한 권을 구하기 위해 몇 날 며칠 헌 책방 골목에 발품을 팔고 다녔던 시절이었다.

이제 스크랩은 가위질과 풀칠이 아닌 클릭 몇 번으로 끝난다. 컴퓨터 자동화로 대표되는 3차 산업혁명 덕에 공간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매번 사람이 직접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는 수고가 따랐다.  소프트파워가 핵심 동력이 되는 4차 산업혁명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정보 스스로 사람을 찾아오게 만든다. 데이터베이스의 축적을 통해 기술은 이제 개별 라이프 사이클을 이해하고 지원하기 시작했다. 개인마다 관심 있을 법한 특정 주제를 큐레이션 해 보여주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해 필요해질 상품을 추천하기까지 한다. 따로 찾는 수고를 거치지 않아도 정보가 먼저 사람에게 다가온다.

가히, 다정한 기술과 부지런한 정보의 시대다.

영리해진 정보통신은 단순히 편의만 제공하는 게 아니다. 기술 발전으로 편하게 실내에서 대부분의 일을 처리 가능해진 시대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의 사회참여는 더 적극성을 띄게 되었다. 매스미디어의 일방적 송출만으로 정보를 접했던 시절에는 기적 같던 일들이 이젠 심심찮게 벌어진다. 특정 기업의 비윤리적 행태에 분노한 사람들의 불매운동이 기업 주가를 하락시킬 만큼 영향력을 행사한다거나, 공권력이 외면한 억울한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사회적 이슈를 만든다거나, 아무도 모를법한 선행 혹은 악행을 모두에게 알린다거나.

어떤 개인의 관심사가 아닌 카테고리라도 주변의 누군가 거기 관심을 표했다면 결국 모두가 알게 되는 광범위한 공유가 이루어진다. 페이스 북 타임라인에만 접속해도 숱한 이슈들이 오르내린다. 그곳에서 개인은 타인이 관심을 표명한 사회 다양한 영역의 문제들을 접하게 된다. ‘A님 외 수백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는 게시글은 비록 평소 본인의 관심 영역이 아니었더래도 클릭해보게 되는 거다. 관계 중심 서비스가 각광받으면서 이런 방식으로 사회 문제들이 환기되기 시작했다.

디지털이 무르익은 시대에 되려 아날로그 감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이유다. 조직이나 개인 모두 도덕과 윤리를 함부로 거스를 수 없는 시대랄까.

일방향 소통의 시대에는 감출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권력을 지닌 조직이나 경제력을 갖춘 기업이 어떤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얼마든지 정보를 통제 가능했다. 간혹, 뉴스를 통해 사건 사고가 보도된다한들 비용을 투입해 그럴듯한 PR광고를 도배하듯 집행하면 금세 무마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지난 뉴스를 잘 찾아보지 않고, 그나마 뉴스도 보는 사람들만 보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TV를 켜거나, 신문을 펼치지 않아도 뉴스가 개인을 찾아온다. 사회 문제에 별 관심 없던 사람이라도 SNS를 비롯해 다양한 서비스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세상 소식을 알게 된다.

기업 이미지를 위한 PR활동은 이제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아닌 실제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사소한 잘못 하나가 영영 발목을 잡을 수도 있고, 큰 잘못을 저질렀다면 덮고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정보를 통제할 수 없는 시대다.

기회를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순식간이다. 이제 그 기회는 평소 행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사람을 향한다’는 카피를 사용한다면 정말로 사람을 위한 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요즘 소위 ‘갓뚜기’라 불리는 오뚜기는 좋은 사례다. 1992년부터 심장병 어린이 후원으로 매월 23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해 온 선행과 2012년부터 밀알재단에 작업을 위탁하여 장애인의 자립을 도와온 일들이 부각되며 호감도가 급부상했다. 특히, 1500억 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정직하게 전액 납부할 것을 공식 약속하며 갓뚜기 열풍의 정점을 찍었다. 사람들은 ‘오늘부터 라면은 전부 오뚜기’라며 구매 인증샷을 올리는가 하면,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선행들을 찾아서 마치 오뚜기 마케팅 부서 직원처럼 기업을 PR하기까지 했다.

개인 사업 역시 다르지 않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엔터스’라는 닉네임은 제법 유명하다. 포털에 검색하면 가수라고 나오는 그는 사실 노래보다 선행으로 더 알려져 있다. 어머니와 수제비누를 판매하고 그 수익금으로 사회 곳곳 어려운 사람들 돕는다. 비누를 파는 쇼핑몰 디자인은 투박하기 그지없지만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닉네임 끝에 ‘님’ 자를 붙여 부르기에 ‘엔터스 님’이 되어 ‘스님 비누’로 명명되는데, 새끼 치는 비누라고도 불린다. 항상 주문 수량에 덤을 붙여 배송하기 때문이다. 다섯 개를 주문했는데 열 개가 도착하는 식이다. 따로 홍보도 하지 않고, 흔한 키워드 광고도 집행하지 않지만 제품은 언제나 완판에 예약이 밀려있다. 선행에 대한 후원의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만 후기를 보면 제품 그 자체에 대한 평이 굉장히 좋다. 피부병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입소문 자자한 비누라고 한다. 또, 엔터스는 비누 판매 수익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금액은 물론 봉사 후기까지 사진과 함께 남긴다. 평소 발언과 행동이 일치하고, 투명성까지 갖추었으니 사람들에게 신뢰를 사는 건 당연하다. 고객들 서로 엔터스 비누를 홍보하고 제품이 새로 나오면 앞 다투어 소식을 전한다.

부지런하고 솔직해진 정보 앞에 꼼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보여주기 식 홍보는 마음을 얻지 못한다.

사람들은 맘만 먹으면 한 대상의 과거와 현재를 샅샅이 알 수 있다. 기업 철학은 그저 소개서나 홈페이지 상 구색 갖추기 항목이 아닌 실제 기업의 행동과 연관되어야 한다. 매체를 통한 PR광고 하나만으로 이미지 상승을 노리기 어려운 시대다. 이제 사람들은 대상을 다각적으로 바라볼 줄 안다. 사소한 소식까지 사방에 알려진다. 지금부터라도 꾸준함을 쌓아나가야 한다. 일관성을 추구해야 한다.

일관성 없는 전략과 지속성 없는 캠페인은 도리어 악재다. 콘셉트의 다양화와는 다른 이야기다. 기업 철학과 실제 행동의 궤를 같이해야 한다는 거다. 공식 홈페이지에 ‘동반성장’이란 기업 철학을 멋들어지게 써 놓아봤자 비정규직 임금 체불을 관행처럼 해 온 사실이 밝혀진 기업에게 신뢰를 보낼 소비자는 없다. 정보가 게을렀던 시대였다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문제도 보상금 몇 푼에 사그라졌을지 모른다. 해당 기업은 여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광고를 집행하고 PR활동에 집중하여 이미지를 끌어올렸을 수도 있다. 지금은 사건 이후 몇 년이 지나더라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웹상에 올라오고 수없이 공유된다. 단 한 번이라도 비슷한 이슈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 데이터가 있다면 그 사람이 이용하는 서비스에 계속 관련 내용이 노출된다.

홍보를 멈추라는 말이 아니다. 방법에 진심을 더하자는 이야기다. 진정성에 목마른 시대다. 생색내고 포장하기보다 묵묵히 옳은 일을 하고 솔직히 알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옳은 일이란 꼭 선행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당연히 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외면하지 말고, 눈속임으로 기만하지 말고.

기업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고객을 산타할아버지로 여기고 다 알고 계신다는 걸 의식하는 게 좋겠다. 어디가 진정성 있는 기업인지 거짓말하는 기업인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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