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를 했다.

약 두 달쯤 전, 나는 장장 4년을 살고 있던 원룸에서 벗어났다. 로또 따위에 당첨된 것은 당연히 아니고 쥐꼬리만 한 수입을 차곡차곡 잘 모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됐다. 다 빚이라는 의미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빚.

올해 말 결혼은 앞두고 있는 우리 커플에게 이 빚더미 아파트는 신혼집이면서 동시에 향후 몇 년간 머물러야 할 보금자리일 것이다. 다 빚이라고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빚이라도 져서 이런 아파트에 산다는 건 꽤 행복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보니 꽤 괜찮다, 수준이 아니라 원룸 따위에 비교해 삶의 질이 확 높아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널찍한 주방과 개인 작업실로 쓰는 방 하나. 덕분에 즐겁게 요리를 하고 카페를 가지 않고도 작업에 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외식비와 커피 값이 줄었으니 경제적으로 좋은 일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총 8개 동의, 그리 크지 않은 단지를 이루고 있다. 그래도 놀이터 2곳, 곳곳에 쉼터, 산책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아담한 아파트 상가에는 카페와 독서실, 편의점과 음식점들이 있다. 뭐, 편의점만 있으면 되지 싶어서 만족하고 있다.

이사를 오고 지난 두 달간 부지런히도 아파트 단지를 산책했다. 딱히 볼거리는 없다. 번화가에서 적당히 떨어진 덕에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이 좋았다. 다들 출근했을 평일 오후, 프리랜서인 나는 그런 평화를 누린다. 가끔 길 건너 시장에 채소나 고기를 사러가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평균 60세 이상의 모든 눈들이 나를 주시하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 ‘저 청년은 이 시간에 일도 안 가고 놈팽이처럼 뭘 하는 건가.’ 싶으실 게다.

단지 내의 놀이터는 주로 아이들과 반려견들 차지다. 어린이집이 2곳 있어서 정해진 시간이 되면 열 명쯤 되는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m&m’s 초콜릿처럼 알알이 나타난다. 그네를 타고, 미끄럼틀을 거꾸로 오르고, 시소에 매달리고, 때로는 제자리에 서서 신나서 견딜 수 없다는 듯 까르르 웃는 아이들을 관찰하는 건 산책의 큰 기쁨이다.

반려견들의 견종도 다양해서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말티즈, 푸들, 웰시코기, 리트리버, 요크셔테리어, 그리고 이름은 모르지만 익숙한 얼굴들. 두 손에 쏙 담길 듯이 작은 강아지부터 앞발을 들고 서면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 것처럼 큰 개까지. 조심성이 많아 만물에 경계심을 풀지 않으면서 짖어대는 사나운 반려견과 사람만 보면 좋다고 달려들어 꼬리를 흔드는 다정한 반려견까지.

비록 우리 단지 바로 옆에는 또다른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 중이라 오후 내내 쿵쾅거리는 소음이 들리지만, 산책 내내 만날 수 있는 그런 풍경들은 마음의 평화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어느 날, 외출을 하려 현관문을 열었을 때 그 강아지를 만나기 전까지는.

  • 사람도 그렇게는 안 키웁니다만

그날은 하필이면 우리 집에 손님이 온 날이었다. 그것도 아주 어린 손님이. 나는 외출하고 없었다. 이미 결혼을 하고 애가 둘이나 있는 여자 친구의 쌍둥이 여동생이 놀러와 있었다. 4살, 2살의 두 아기들은 현관 신발장에 놔둔 2인용 웨건에 태웠다. 나갈 준비를 마치고 여자 친구가 현관문을 열었는데, 약 1m 전방에 미니핀 한 마리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당황한 여자 친구는 황급히 문을 닫았고, 쌍둥이 여동생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아니, 웬 강아지가 자기 집 찾아온 것 마냥 문앞에 앉아 있어.”

참고로 여자 친구와 쌍둥이 여동생은 둘 다 강아지를 두려워하는 편이다. 보기에 귀엽다는 건 알지만, 절대 만지고 싶어 하지 않는 편이랄까. 게다가 신발장에는 4살, 2살 아기가 있었다. 아무리 작은 미니핀이라지만, 그리고 아무리 사람을 반기는 마음에서라지만 만에 하나 열린 문으로 달려 들어온다면 여러모로 낭패일 것이 분명했다. 두 성인 여성은 놀라 혼비백산할 것이고, 두 아기들도 놀라 울 것이다. 밖을 돌아다니던 강아지가 집안을 활개치고 다니면 바닥도 지저분해질 것이고, 앙칼지게 짖기라도 하면 상황은 악화될 것이 뻔하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아기들을 물기라도 한다면?

여자 친구는 다시 한 번 살짝 문을 열었는데, 1m 전방에 있던 미니핀이 거의 30cm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다시 재빨리 문을 닫고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다다다 달려가는 발소리가 작게 들렸다. 다행히 미니핀은 계단으로 떠나고 없었다. 어느 집일까. 아마 외출 준비를 하려다가 강아지를 놓친 것이겠지.

만약 내가 집에 있었다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강아지를 좋아하고, 강아지 만지는 것도 좋아한다. 잘 어르고 달래 미니핀을 품에 안고 집을 찾아주기 위해 층을 옮겨 다녔을 것이다. 어쩌면 나에겐 꽤 즐거운 해프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강아지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크기가 얼마이건 간에 말이다. 더군다나 아파트처럼 대규모 공동주거공간에서는 반려견이 항상 견주의 통제 하에 있는 것이 상식적이다. 여자 친구와 쌍둥이 여동생은 두려움을 넘어 화가 나있었다. 물론 나도 화가 났다.

그러고 보니 혼자 산책할 땐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목줄 없이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나야 신경 안 쓴다지만, 그건 분명 몰상식한 짓이다. 아파트 단지는 ‘내 집 앞마당’이 아니라 ‘공동주거공간의 공유 공간’이다. 우리 애는 안 물어요. 우리 애는 순해요. 우리 애도 매일 목줄하면 갑갑하지 않겠어요. 저기, 견주 분. 요즘은 사람도 그렇게는 안 키워요. 정말 반려견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고 싶다면, 다른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가거나 같은 마음으로 모인 견주분들끼리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할 일이다.

현관문 앞 미니핀 사건을 전해 듣고, 관리사무소로 향했다. 최대한 정중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각 라인에 공지를 부착하거나 안내방송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직원의 사무적인 미소 뒤로 ‘뭐, 그런 걸 가지고…’ 하는 본심이 슬쩍 비쳤으나 토를 달진 않았다. 그러고도 거의 2주 동안 어떤 공지도, 안내방송도 없었다. 우리 집으로 미니핀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지만, 놀이터에는 여전히 견주 통제 밖의 반려견들이 뛰어 다녔다. 멀리서 보기에는 행복하고평화로운 장면이지만, 실상 이기적이고 몰상식한 장면이기도 했다. 아까의 그 4살, 2살 아기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때에도 그런 적이 있어서, 견주분에게 단호한 어조로 “애기들도 있고, 산책하실 땐 목줄 좀 하고 다니시죠.”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몇몇은 미안해했고, 몇몇은 불쾌해했다.

그러다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 부착된 ‘견주가 지켜야 할 에티켓’이라는 공지를 발견했다. 그날 저녁엔 안내방송도 나왔다. “최근 아파트주민들로부터 반려견과 견주 분들에 대한 민원이 폭증하여…”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또 그런 몰상식한 장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어서. 괜히 까탈스러운 사람이 될 뻔했는데,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어서.

꼭 반려견뿐만 아니라, 살다 보면 자신이 잘 아는 대상에 대해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 때로 그 신뢰는 이성적인 근거가 아니라 감정적인 애정에 근거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견주들이 “내가 아는데 우리 애는 안 물어요.” 라든가, “우리 애가 얼마나 순하고 귀여운데.”라든가 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다 하더라도 남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부드럽다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까지 그 가시를 견딜 이유는 없다. 아닐 수도 있다는 자세. 나도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자분자분 돌이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