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긋지긋한 제자리걸음

좀 뻔한 얘기를 해볼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평생을 다이어트 중이다. 어깨 너머로 배워도 30년이면 청출어람이요,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다이어트만은 늘지를 않는다. 놀랍게도 지난 30년간 몸무게만은 꾸준하게 늘어 바로 요즘, 인생 최대 몸무게를 기록했다. 괜찮겠지, 괜찮겠지 하다가 정신차려보니 90kg을 넘기고 말았다. 아무리 몸을 막 굴려도 절대 넘지 않는 상한선이라는 게 있다고 믿었는데, 견고하게 버티고 선 것들이 대개 그렇듯 한 번 무너지고 나면 속수무책인가보다.

그렇다고 입으로만 다이어트를 외치는, 속되게 말해 ‘아가리어터’는 아니었다. 학창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군 입대 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5일씩 축구를 해댔다. 종아리에 쥐가 나고 허벅지가 타들어가는 것 같아도 뛰어다녔으니, 실력은 못 미쳐도 그 활동량만큼은 축구부 못지않았을 테다.

군대에 가서는 또 뻔하디 뻔하게 웨이트트레이닝에 맛을 들였다. 동기 생활관을 썼기 때문에 방에서는 잠들기 전에 선임 눈치를 보지 않고 팔굽혀펴기 200회를 할 수 있었다. 체력단련실에 입장할 수 있는 계급이 되자마자(우리 때만 해도 일병 나부랭이까지는 체력단련실에 입장이 불가했다.) 저녁 식사 직후 청소가 시작되기 전까지 하루 2시간가량을 운동에만 전념했다. 안타깝게도 운동 방법, 영양, 휴식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들인 노력에 비해 근육질의 몸매를 얻진 못했지만, 나름 날씬한 시절이었다.

전역 후에도 1년에 6개월 정도는 헬스장을 다녔고, 나머지 6개월은 철봉이나 평행봉으로 맨몸 운동을 하기도 하고 등산을 다니기도 했다. 간간이 축구도 했고 한때는 온몸을 땀으로 적셔가며 택배일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몸무게는 90kg. 미시적으로는 몇 kg의 증감이 있었지만 거시적으로는 꾸준히 증가해온 셈이다.

뭐 여러 가지 이유, 아니 변명들을 댈 수 있다. 일단 식단조절을 전혀 하지 않았다. 매 끼니 식욕에 충실했고, 정기적으로 야식도 먹었고, 가끔 배가 터질 것 같아도 마음이 허기질 땐 꾸역꾸역 디저트까지 먹었다. 그러니 아무리 움직여도 넘쳐나는 공급을 당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잉여 생산물은 악성 재고처럼 지방이 되어 몸에 쌓였다.

두 번째로, 유산소 운동을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면 웨이트 트레이닝 후 유산소 운동을. 중량을 견디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유산소 운동은 저마다 일정 수준의 버거움을 넘기면 고통인지 희열인지 모를 영역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웨이트 트레이닝의 그 영역에만 도달했던 것이다. 애써 근육량을 늘린 이후에는 근손실이 걱정돼 유산소를 더 피했다. (물론 나 같은 아마추어 수준에서는 유산소 한다고 근손실이 일어날 일이 없다. 그걸 알면서도 그랬다. 합리화의 구실이 필요했던 게지.)

자, 쉽게 말해 허구한 날 웨이트 트레이닝만 하면서 아무거나 막 먹어댄 것이다. 그 덕에 근육량이 늘기는 했다. 꾸준히 늘어 이제 인바디의 골격근량이 40을 넘는다. 그런데, 그러면 무엇하나. 지방이 더 많이 늘어버렸는데. 같은 무게일 때 지방이 근육보다 부피가 더 큰데. 이 지긋지긋한 제자리걸음, 이라고 하려다가 따져보니 제자리에도 머물지 못했다. 다이어트의 길에서 나는 계속 퇴보, 퇴보, 뚱뚱해진 몸으로 퇴보 중.

  • 시작이 반이다. 그럼 나머지 반은?

그 모든 다이어트의 실패에도 내가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건 ‘시작이 반인데’라는 문장 때문이었다. 그렇다, 시작이 반인 것이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고, 니체도 말했던 것이다. 매번 실패하면서도 새로 헬스장을 등록하고서 “그래! 시작이 반이지!”하며 의기양양했던 그 표정이란. 시작했으니 뭐라도 되겠지, 하는 그 대책 없던 믿음이란. 그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도 어찌됐건 시작을 계속 했다는 게 다행인 걸까. 아니면 ‘시작이 반’이라는 미명 하에 늘 반만큼만 했던 게 불행인 걸까.

베스트셀러 <피니시>의 작가이자 유능한 커리어코치인 존 에이커프. 그는 자신이 고안한 ‘도전 30일 프로젝트’에서 사람들이 시작만 하고 끝내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완벽주의’를 꼽는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완벽주의라는 악당에 맞서, 늘 이기려고만 하다가 끝내 실패하는 것이라고. 나는 스스로 완벽주의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가 말하는 ‘완벽주의에의 패배’가 무엇인지는 알겠다. 꼼꼼하고 철저하게 세운 계획을 잘 지키다가 어떤 이유로 그 루틴이 어그러졌을 때, ‘에이, 어차피 못 지켰는데 오늘 하루는 그냥 쉬자!’하게 되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보면, 나도 은근히 완벽주의자였던 것이다. 또는 완벽주의를 빙자해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나태주의자였을 수도 있고.

아무튼 커리어코치인 존 에이커프조차도 스스로를 매우 게으르고 끈기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앤젤라 더크워스의 ‘그릿 테스트’를 받아본 적이 있는데, 결과가 너무 처참해서 그래프로 표현하기 민망할 수준이었다고. 이거 어쩐지 “이거 봐, 이렇게 게을러빠진 나도 해내는데 여러분이라고 못할 이유가 뭐겠어.” 톤이라 약간 거부감이 들기는 했는데, 이어지는 그의 말이 꽤 설득력이 있다.

“누구나 완벽이라는 악당에게 패배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완벽하지 않은 그날이 시작만 하는 사람과 끝까지 완주하는 사람을 결정짓는 날이다.”

그는 시작만 하고 끝내지는 못하는 괴상한 완벽주의자들에게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목표 감량’이다. 더 원대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줄이라는 것. 이거 왠지 자존심도 상하고,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해서 별로다 싶었다. 네가 뭔데 내 가능성을 무시해. 내 의지, 내 계획을 처음부터 짓밟는 거냐고. 그런데, 알고 보니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 자신에 대해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는 동물이었다.

미국 교수로 퓰리처 상을 수상한 바 있는 더글라스 리처드 호프스테터. 그는 1988년부터 인디아나 대학에서 Concept and Cognition 연구 센터를 이끌면서 인간이해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은 계획을 세울 때 낙관주의적 편향을 보인다는 것을 발견하고, 호프스테터 법칙이라 명명한다. 즉,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에는 항상 노력하고, 더 높은 성과를 이뤄내는 모습을 그리며 계획을 세운다는 것. 실제의 자기 능력과 외부 환경의 변수를 고려하는 대신 낙관적이기만 한 계획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아, 그래서 내가 여태 다이어트를 실패했던 거구나…

실제로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도 건립 과정에서 이런 계획의 오류를 겪었다. 1957년에 설립이 계획된 오페라하우스는 당초 77억 원의 비용을 들여 1963년에 완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결과는 실패, 실패, 대실패. 실제 개장년도는 1973년으로 계획보다 10년 늦어졌고, 투입 비용도 예상 비용의 10배가 넘는 1,100억 원이 들었다. 좌우지간 지금의 오페라하우스가 아름다우니 된 거 아니냐고 하신다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존 에이커프가 말한 ‘목표 감량’을 통해 ‘낙관주의 편향’에 의한 ‘계획 오류’를 줄였다면 훨씬 더 빠르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건립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

아니 그래서 결혼식을 불과 7개월 앞두고, 그보다 먼저 스튜디오 촬영은 불과 5개월 앞두고서 90kg의 체중을 감량할 나의 계획이 무엇이냐고? 음, 일단 하루 3끼만 먹고 이틀에 한 번은 30분 이상 운동하는 것. 겨우 그걸도 되겠냐고? 그게 네 계획이냐고? 어허, 원래는 이것보다 훨씬 거창하고 대단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목표 감량’을 통해 보다 현실적인 계획부터 시작하려는 것이다. 체중을 감량해야 하는데 목표를 감량해서 되겠느냐고? 어허, 이번엔 ‘시작이 반’이라는 말보다 ‘나머지 반은 끝마무리’라는 말에 비중을 두기로 했다. 끝까지 해내고 나면, 적어도 절반보다는 더 좋은 결과를 얻지 않을까. 시작이 반이었고, 끝맺음까지 해낸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