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러닝화를 장만했다.

일주일 두세 번 집 근처 온천천을 달릴 만큼 러닝을 즐긴다. 전의 러닝화를 1년 가까이 신었더니 푹신한 쿠션감이 느껴지지 않아 무릎이 아파왔고 더 이상 이 신발로 달리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새 러닝화를 장만했다. 아시아인의 족형에 특화된 신발로 러닝, 마라톤 마니아가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 제품이다. 큰맘 먹고 꽤나 큰 돈 들여 장만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새 러닝화가 불편하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불편하다. 이 신발로는 달리기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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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1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축구를 배웠다. 전에 형, 친구들과 하던 것과 차원이 다른 꽤나 전문적 방법이었고 학교로부터 유니폼과 축구화를 지급받았다. 당시 지급받은 유니폼은 유명 브랜드의 기능 제품이 아닌 부산 기장군의 시골에 위치한 장안 스포츠사에서 만든 어설픈 원단의 디자인도 없는 새빨간 옷이었다. 축구화 역시 힙포에서 만든 것이었다. 그렇다. 하마 그림이 그려진 축구화를 신고 축구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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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군 생활을 하며 전투화 손질만큼 많이 했던 게 연병장을 달리는 일이었다. 잡일 많던 일 이등병 시절을 제외하면 단체 체력단련 외 따로 매일 같이 연병장을 달렸다. 입대와 동시에 보급 받은 활동복과 활동화, 대대장님께서 연대 축구 대회 우승을 염원하며 사주신 촌스런 유니폼을 입고 하루 10바퀴가 넘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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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서 드러나듯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축구와 러닝이다. 서핑과 탁구도 종종 즐기지만 두 종목에 비견할 수 없다.
원래도 축구를 좋아했지만 중학교 때 잠깐 배웠던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디 가서 못한다는 소리 안 들을 정도의 실력이 된 것이다.

잦은 축구 경기에 축구화 교체 주기도 잦아졌다. 어릴 적 값비싼 것은 없었으나 신고 뛸만한 축구화가 있었고 그것이
다 떨어질 때쯤이면 같은 팀의 나이 많은 형님들께서 본인이 몇 번 신다만 것들을 주셨다. 취업 전까지 대개 그런 식으로 형님들께서 주신 축구화를 신고 뛰었고 여전히 어디 가서 못한다는 소릴 듣지 않았다.

내 첫 마라톤 때 신은 신발은 러닝화가 아니었다. 무모하게도 평소 신던 운동화를 신고 하프를 달린 것이다. 당시 함께 뛰었던 형님께선 내 신발은 무거우니 달리기에 부적합할 거라고 했다. 형님께선 일본 유명 브랜드의 러닝화를 신었다.
젊었고 체력도 좋았던 당시의 난, 달리기는 장비가 아닌 튼튼한 다리로 하는 것이다 고 생각했다. 다행히 일반 운동화를 신었음에도  무사히 첫 마라톤 하프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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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러닝화는 여전히 불편하다. 전에 신던 러닝화는 오래된 부부처럼 발과의 밀착감이 좋았으나 꺼져버린 쿠션감이 불편했다. 그래서 며칠 달리기를 쉬기로 했다. 그것이 연속되어 몇 달을 쉬게 되었고 가끔 생각날 때마다 띄엄띄엄 달렸으나 며칠이 안 되었다.

문제는 전에 신던 러닝화의 쿠션감이나 새 러닝화의 어색함이 아니라 나의 게으름에 있다. 내가 게을러 뛰지 못한 걸 러닝화에 쿠션감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새 러닝화 장만은 핑곗거리에 불과하다.

대학 신입생 시절 새 친구를 맞은 듯 새 러닝화는 여전히 불편하다. 사실 중학교 시절 시골 스포츠사에서 만든 유니폼도 불편했다. 힙포 축구화도 그랬고 군 시절 신고 달렸던 활동화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것들의 불편함이 내가 운동을 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모든 것들을 차치하고서 달려만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렇지 않다. 달려야 할 이유보다 달리지 못할, 달리지 말아야 할 이유를 더 찾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달리지 않는 이유는 러닝화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달릴 의지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끝없는 휴식으로 체중은 불어나고 몸은 점점 게을러져 가고 있다.
달리지 않은 이유는 러닝화의 불편함이 아닌 나의 의지에 있는 것이다.

보다 젊었던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말한다.
달리기는 장비가 아닌 튼튼한 다리로 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