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우리의 시린 발은 누가 지키지

  며칠 전 기분 좋은 첫눈이 내리기에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사람이 없는 거리에서 뽀드득 눈을 밟으며 걷는 동안 아무데도 춥지 않았는데, 발이 무척 시렸다. 내 걸음에 눌린 눈이 만들어내는 자국을 보며 한참 걷고 있으니 방한신발 생각이 커졌다. 그러는 동안 천에 묻는 눈이 조금씩 녹아 신발 사이로 젖어들었다.
  ‘눈은 차갑구나.’
  참으로 새삼스러운 생각을 하면서 조용한 눈길을 느리게 걸었다. 추위 속에서도 여전히 하얀 흩날림이 주는 느낌이 좋았고, 시린 발에도 살풋 내려앉는 눈의 질감이 좋았기 때문에.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유지하라.’
  이는 한의학에서 건강한 습관에 관해 자주 쓰이는 격언이다. 머리는 차갑게 식혀주는 것이 병을 예방하고 발은 항상 따뜻하게 유지해주어야 혈액순환이 잘 되기 때문이다.
  이것만 잘 지켜도 웬만한 병치레는 하지 않는다는데, 건강해지는 방법이란 참 간단해서 더 약이 오른다. 쉬워보이는데 막상 잘 지켜지지 않는 사항이 대부분이니까 말이다. ‘골고루 챙겨먹고 적당히 운동한다.’라든가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고 소식한다.’라든가.
예습 복습 철저히 하고 수업시간에 집중하면 공부 잘하는 거 누가 모르겠나, 그런데 어쩌나 지키기가 힘든게 문제인 것을.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듯하게 유지하라는 조언은 쉬워 보인다. 그런데 실은 발은 우리의 신체 중에 보온에 있어서 생각보다 홀대받는 부위 중 하나다. 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몸 쪽엔 따뜻한 옷을 겹겹이 걸쳐입고, 그것도 모자라 내복에다 기모 같은 각종 겨울용 재질의 옷을 따져가며 챙겨 입는다. 그렇게 신경 쓰면서 신발은 어째서 여름이나 겨울이나 색깔만 다른 똑같은 운동화인거지?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그렇다면 이 추운 겨울, 우리의 ‘따뜻한 발’은 누가 지켜준단 말인가.
  나 역시 신발의 기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보온성’을 많이 고려하지 않았었다. 튼튼한가. 가격은 적당한가. 편안한가. 바닥은 폭신한가. 전부 꼼꼼히 따지고서 정작 따뜻함을 배제한다면 겨울철 신발을 고르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인지 단단히 챙겨입고 나갔다고 생각한 날에도 몸은 하나도 춥지 않은데 발이 너무 시려서 동동 구르면서 고생한 적이 많았다. 일기예보를 보고 분명 ‘오늘은 따뜻하게 잘 하고 외출해야지.’했는데, 위쪽으로는 중무장하고 신발은 그냥 어제 그 신발. 그냥 걷기 편한 내 신발이었던 것이다. 그리곤 저녁마다 발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고 생각하며 후회하는데 말이다.
  머리와 발이 너무 멀어서 자꾸 발도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잊게되는 걸까?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이토록 추운 겨울, 따뜻한 신발은 꼭 필요하다. 우리가 겨울을 따뜻하게 나려고 노력한다면 발도 분명 그 보호 속에서 따뜻할 권리기 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가장 차가운 지면에 붙어서 시리게 고생해야 한다면 얼마나 서러울까. 걷기도 편하고 바닥은 부드럽고 예쁘면서도 바람 안들고 온기를 유지해줄 수 있는 바로 그런 신발. 진짜 겨울 신발이 필요하다.
  눈이 잦아들때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참이나 전기장판과 이불 속에서 발을 감싸고 언 발을 녹였다. 갑자기 도는 훈기에 따가운 것처럼 발이 달아 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내일부터는 진짜 따뜻한 ‘겨울 신발’을 신기로 다짐했다. 기대하지 못했던 눈이 내릴 때도 맘껏 기뻐하며 언제든 달려나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니지, 머리는 빼고 목부터 발끝까지 따뜻하게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