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소울 시즈닝이라면 고추가 빠질 수 없다. 한반도 땅의 고추는 임진왜란 시기 전후를 그 기원으로 한다. 고추는 원래 적도 부근의 아메리카가 원산지로 한반도에는 없는 식물이었다. 유입경로는 크게 두 경로로 유추하는데 일본 유입설과 북방 전래설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일본 유입설을 살펴보면 고추는 담배와 함께 일본으로 부터 전파되었다는 추측을 한다. 담배 또한 신대륙에서 건너온 작물로서 콜럼버스 이후 무역이 활발할 때 일본을 거쳐 조선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수광의 지봉유설(1613)을 보면 남만초라는 것을 소개하면서 ‘일본에서 건너온 왜개자에는 독이 있다’ 고 말한다. 이 때 이 왜개자를 고추라고 보는 것이다.

북방유입설은 페루를 중심으로 한 중앙아메리카와 남미의 고추가 유럽을 거쳐 일본을 지나 한국에 들어왔다는 설이 생물학적으로도 틀렸다고 본다. 남미를 원산지로 한 고추가 한반도에 들어왔다면 한국 고추와 페루의 고추는 유전적으로 염기서열의 동일성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오히려 헝가리언 왁스라는 동유럽 북방지역의 고추와 한국 고추의 유사성이 더 눈에 띈다고 주장한다.

어느 하가 정설로 받아들이기 힘들만큼 두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고추의 기원 하나를 두고도 이런 열띤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고추는 필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울푸드인 것은 맞는것 같다. 그런데 이 두 주장의 논쟁은 차체하고서라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는 한국인의 ‘빨간 음식은’ 어쨌든 임진왜란 이후에나 보편적으로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임진왜란 이전에는 빨간 김치보다 하얀 김치 밖에 없었고, 실제로 매운 김치는 18세기나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사실 고추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때는 이것이 식품이었나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들 정도의 역사적 기록이 많다. 고추가 들어온 초기에는 고추를 독초로 취급했다. 조선 사람들이 전혀 맛보지도 경험한 적도 없는 이 강력한 매운맛 때문이었다. 앞서 말한 이수광의 ‘지봉유설’ 에서 처럼 왜개자는 독초였고, 신기한 것은 당시에도 고추를 소주에 타 마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추에는 강렬한 독이 들어 있어 술집에서 종종 고추를 심었고, 이 맹렬한 성질 때문에 소주에 고추를 타서 팔기도 하는데 이를 마시고 죽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소주에 고추를 왜 탔을까? 독한 소주를 더 독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지봉유설’ 을 더욱 살펴보면 고추가 들어온 초창기에는 조미료로 먹었던 것이 아니라 주막에서 소주를 독하게 만드는 일종의 첨가제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혹은 독약처럼 이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고추가 아무리 맵다 한들 소주에 넣었다고 죽은 사람이 있을까, 의아하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조선시대의 소주는 순수 증류주였다. 그래서 알코올이 보통 50도를 가볍게 넘었다.

조선의 소주가 얼마나 독했는 지는 숙종 시대에 청나라에 출장갔단 이의현이 남긴 ‘경자연행잡지’ 라는 기행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의현은 북경 사람들이 조선 소주가 너무 독해서 마시지도 않고 마셔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기록해 놓았다. 당시 중국인들은 ‘빼갈’을 마시던 나라였는데, 이런 술을 마시는 청나라 사람들조차 조선의 소주를 보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이런 소주에 고추를 섞었다면 분명 독약 정도의 파괴력은 가졌을 것이다.

그래서일가, 고추가 전쟁에서 사용된 흔적도 자주 보인다. 즉 지금의 화학무기와 같은 용도로 사용했던 기록도 남아있다. 순조 때의 실학자 이규경에 따르면 매운 고추를 따서 말린 후 가루로 만들어 무기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적들과 대치하고 있을 때 독한 고춧가루를 주머니에 담았다가 적진에 던져 뿌리면 고추 폭탄이 터지면서 코에서는 재채기가 나오고,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앞을 볼 수 없으니 견디다 못한 적들이 앞 다투어 도망간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치면 최루탄의 용도와 비슷하고, 여성들의 호신용 스프레이 원리와 비슷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임진왜란 당시에도 고추가 전쟁무기로 쓰였다고 한다. 왜란 당시 일본군들은 고춧가루나 고추를 태운 연기로 최루탄처럼 사용하여 조선군을 공격하거나 음식에 넣어 독살용으로 고추를 가져왔다. 그런데 의외로 조선인들이 이 식물에 대한 적응을 했다는 것이다.

고추에 대한 기록은 식품으로의 기록보다 두려움의 기록이 더 많은데 이규경이라는 사람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 에서는 ‘고추는 너무 맵기 때문에 자칫 입술이 마비되거나 목이 막힐 수도 있다. 고추를 많이 먹으면 몸에 종기가 나기도 하며, 임신한 여자가 잘못 먹으면 아이가 떨어질 수도 있다’ 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까지도 고추를 독극물과 같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점은 흥미롭다.

다른 한편으론 병을 고치기도 하는 등의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기도 했다. 예컨대 겨울철 먼 길을 떠날때 신발 속에 고추를 넣어 가지고 다녔다. 고추의 매운 성분 때문에 열이 나서 피의 흐름을 좋게 할 뿐만 아니라 발이 시리지 않는 다는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핫팩의 역할을 한 것인데, 실제로 그런 효과를 낼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긴 하다. 또 오랫동안 길을 걸은 발에 고춧가루를 문질러 굳은살을 없애기도 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조선시대의 의사들 또한 장이 막혀 대변을 보지 못할 때 고추를 먹으면 바로 설사를 하면서 막힌 속이 뚫린다고 했다. 이는 우리 회식 후 ‘매운닭발’ 집에서 2차를 마친 그 다음 날, 경험한 사람들이 몇몇 있을 것이다.

매운맛 자체는 ‘미식’ 에서 사실 제외하는 일종의 통각이다. 하지만 한반도 사람들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이 매운맛에 대해 꾸준한 면역력을 보였다. 그래서 종래의 두려움과 화학적 반응을 다 극복하고, 매운맛을 미식의 경지로 이끌어 냈다. 처음부터 맛있어서 탐닉했던 음식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을 극복했던 진정한 소울푸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