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인생 최고 전성기, 병장

남학생들이라면 학창 시절 몰두했던 무엇인가가 하나쯤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컴퓨터 게임, 스포츠, 판타지 소설, 노래, 이성, 야동(?) 등등.. 웬만하면 방금 제시한 카테고리 중 하나에는 포함되지 않을까? 혹은 하나 이상일 수도 있겠고. 나는 게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반면 노래, 축구, 문학, 토론에는 관심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당시 내가 가장 몰두했던 건 축구였다.

특히 나의 축구 사랑은 유별나서, 주말이나 휴일은 물론이고,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치는 날, 소풍 날, 쉬는 시간, 점심시간 할 것 없이 틈만 나면 축구를 했다. 게다가 ‘새축(새벽축구)’ 이라고 해서 오전 6시 반쯤 일찍 등교해서 1시간쯤 축구를 했고, ‘야축(야간축구)’ 라고 해서 야자 마치고 거의 자정께까지 또 축구를 했다. 확언하건대 나는 공부보다 축구를 더 많이 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선수가 되거나 하지도 못했고, 튼실한 허벅지와 까만 피부만 얻었을 뿐이지만.

아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친구들이 가끔 치켜세워주는 정도는 됐던 것 같다. 그러던 내 축구 실력이 전성기를 맞았던 때가 있었는데, 바로 군대에서였다. 특히 병장을 달고 나서부터는 축구 실력이 거의 선수급이었다.(고 믿었다.) 볼 키핑 능력은 거의 야야 투레급(이었다고 착각했다.), 드리블은 호날두(호날두 형님, 죄송합니다.), 골 결정력은 메시급(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이었다. 한창 운동할 때라 몸도 날쌨고 힘도 좋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축구 기억을 꼽으라면, 당연히 그 시절을 꼽을 것이다.

병장, 화려했던 시절은 가고

그러니, 전역 후 오랜만에 만난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풋살에서 내 자신감이 얼마나 엄청났겠는가. 나는 군대에서 병장으로서 그랬던 것처럼 거만하고 여유롭게 드리블을 했고, 상대 수비수에게 뺏겼다. 상대팀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패스를 했고, 상대 수비수에게 뺏겼다. 알고도 막을 수 없는 무회전 슈팅을 하고 싶었지만, 상대 수비수에게 뺏겼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친구들은 축구를 너무 잘했다. ‘뭐지? 불과 일주일 전까지 내 축구 실력은 어마어마했는데.’ 현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병장이었던, 그 화려했던 시절은 군 전역과 함께 막을 내렸다. 이제 아무도, 내 축구 실력을 포장해주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회사 체육 대회에서 만연하는 ‘부장님 축구’ 같은 걸 병장 시절 내내 즐겨왔던 거다. 서로 쿵짝을 맞춘 콩트처럼, 나는 드리블하고, 후임들은 어,어, 하면서 나를 놓친다. 소위 ‘병장 축구’의 헛된 즐거움을 눈치 채지 못하고, 그것이 온전히 내 실력인 줄 알았던 거다. 아, 백일몽을 깨는 순간의 민망함과 부끄러움이란. 거기에 더해서 한치 거짓 없는 거울 앞에 서서 초라한 내 축구 실력을 대면하는 그 환멸감까지. 한동안 나는 그저 즐기기나 하면 될 축구를 할 때마다 그 자괴감과 열등감을 내던지지 못했다.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요

누구나 성찰을 한다.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고, 뭔갈 깨닫거나 고치고, 후회하고, 다짐한다. 그러니까 누구나 자신만의 거울을 하나쯤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 시절의 나에게도 물론 그런 마음의 거울, 나만의 거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절 내 거울은 맑지 못했다. 거울 속의 나는, 나를 왜곡했다. 주변의 거짓된 피드백, 달콤한 칭찬과 텅빈 인정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거울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나를 외면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나는 성장하지 못했고, 성장하지 못했으면서 허세와 자존감은 높아졌고, 활동 영역을 벗어나는 순간 이 모든 것은 탄로 났고, 나는 별 볼 일 없는 실체를 마주해야 했다. 아니, 무슨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고 진부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이야기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전하고 싶은 것은 군대도 아니고, 축구도 아니다. 리더의 자리에 섰을 때, 우리가 흔히 겪게 될 일에 대한 이야기다.

리더, 진실된 피드백의 부재

요즘은 수평적 조직 문화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긴 하나, 숙명적으로 리더란 어떤 조직의 최종적인 결정권자이다. 과정은 수평적일지 모르나, 결과는 리더의 몫이다. 또한 리더는 늘 팀원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팀원들 또한 리더라면 마땅히 뭔가 더 대단해야한다는 기대감을 갖는 것도 일면 사실이다. 특히 ‘인간관계’ 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리더란 ‘팀원들이 눈치를 봐야 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리더에게는 ‘진실된 피드백’ 이 부재하거나, 부족한 경우가 많다.

부서원들끼리 오늘은 왠지 햄버거, 피자가 땡긴다고 한다. 그때 부장님이 오늘 같이 흐린 날엔 짜장면이 딱이라며 중국집에 가자고 한다. 흐린 날씨와 짜장면 사이의 맥락도 모르겠고, 우리는 햄버거와 피자가 먹고 싶지만, 일단 짜장면을 먹기로 한다. 그 뿐인가, 산채 비빔밥은 맛있지만 죽은 체 비빔밥은 맛없다는 별 말 같지도 않은 말장난에 웃어줘야 하고, 병장이 드리블을 할 땐, 발도 조심히 뻗는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모두 리더에게 ‘진실된 피드백’이 부재하거나 부족한 사례들이다.

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렇다고 팀원들에게 ‘진실된 피드백을 하지 않는 잘못’ 을 물을 수는 없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니까. 그들의 위치에서, 그들의 역할을, 학습한 대로 해내고 있는 것이다. 장강명의 소설 ‘표백’에 나온 에피소드처럼, 청년들이 도전하지 않는 것을 잘못이라 꼬집는 자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면, 싹수 노랗다는 핀잔이 되돌아오곤 하는 사회에서 팀원들이 무작정 ‘진실된 피드백’ 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장님, 흐린 날이랑 짜장면이 무슨 관계인지도 모르겠고요, 저희 전부 피자 먹고 싶은데요. 다수결로 하시죠.” “죽은 체 비빔밥이요?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마세요. 썰렁하다고 왕따 당하시기 싫으면” “김경빈 병장님, 축구 진짜 못하시는 거 아십니까? 진짜 봐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자, 이런 게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아니다.

그러므로 리더는 스스로 명경을 지녀야 한다.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러니까, 리더는 리더 스스로 성찰할 줄 알아야 한다. 거칠게 말하면 제 분수를 스스로 알아채야 한다는 거다. 오만과 편견, 아집 같은 먼지가 끼지 않도록, 수시로 스스로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팀원들의 피드백 중 폐부를 찌르는 쓴 소리들은 새겨듣고, 달콤한 말들은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회식 자릴 만들어 봐도, 어차피 팀원들에겐 회식 자리 자체가 부담이 되어버릴 테니까. 리더란 그렇게 외로운 자리라는 걸, 늘 잊지 말아야 한다.

때문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진부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속담의 의미를 한 번 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고개를 빳빳하게 드는 것과 숙이는 것을 단순히 오만과 겸손을 드러내는 태도의 대조법 정도로 이해하기보다는,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빳빳하게 든 고개가 향하는 곳에는 빛나는 태양과 희망찬 하늘만이 가득하지만, 겸손하게 숙인 고개가 향하는 곳에는 자신의 그림자가 있다.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나는 얼마만큼 풍요롭고 빈곤한지, 마치 맑은 거울처럼 거짓 없는 자신의 그림자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어쩌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의 진의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돌아보라’ 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