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달인’ 은 재밌다.

꼬박꼬박 챙겨보는 건 아니지만, 채널을 돌리다가 마주치면 꼭 지나치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생활의 달인’이다. 말 그대로 직종을 막론하고 생업의 현장에서 달인이 된 이들을 발굴(?)하고 검증(?)하는 프로그램이다. 2005년 4월 첫 방영을 했으니 벌써 햇수로 12년째 전국 방방곡곡의 달인을 소개하고 있는 중이다.

‘생활의 달인’ 은 사실 ‘달인의 종류’ 라는 콘텐츠가 바뀌는 점만 제외하면 큰 틀에서 늘 일정한 흐름을 따른다. 궁금증을 자아낸다, 달인을 찾아간다, 달인의 실력에 놀란 뒤 미션으로 실력을 검증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달인이 되기까지의 삶과 그 의미를 조명한다. 더 단순하게 얘기하면 예능으로 시작해서 드라마로 끝나는 구성이다. 늘 알면서도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만드는 구성, 감탄하다가도 어떻게 살아야할 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구성.

특히 요리에 관한 달인들은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달인들이 등장했지만, 유독 요리나 음식에 관한 달인들이 많았던 것 같다. 중식, 한식, 일식, 양식은 물론이고 칼질의 달인, 만두의 달인, 라면의 달인… 침샘을 자극하고, 정성에 혀를 내두르게 하는 그런 달인들. 그런 달인들을 보노라면, 요리 그까이꺼 대충 소금, 후추 뿌리고 미원 팍팍… 그동안 내가 만들어 먹었던 요리가 민망해지고 내 몸에게 미안해지는 순간들도 많았다.

내 기준에서 요리 달인들은 다루는 식재료나 요리 종류에 따라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신속정확 형’ 과 ‘정성백배 형’ 초밥이나 회, 어패류를 다루는 달인들은 주로 ‘신속정확 형’이다. 그 순간, 순간의 신선도가 생명이기 때문에 지체하지 않고 요리를 해낸다. 반면에 육수를 내거나 숙성시키는 요리를 하는 달인들은 주로 ‘정성백배 형’이다. 가끔은 ‘굳이 저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성과 시간을 들인다.

아이디어도 식재료와 같아서

비록 ‘글쓰기의 달인’은 아직 되지 못했지만, 매주 정해진 분량의 글을 써내야 하는 내게도 아이디어를 다루는 나름의 요령이 있다. ‘완성된 글’ 자체가 무슨 신의 영감처럼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아이디어’ 가 문득 떠오를 때는 있다.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들은 때로는 회나 어패류 같고, 또 때로는 생고기나 육수 같다.

어떤 아이디어는 떠오른 지금 당장 메모해두지 않으면 문밖으로 달아나버리는 고양이처럼, 흔적도 소리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떠올랐을 때의 이미지가 아주 명확하고, 써야할 내용의 기승전결도 함께 구상될 때가 많기 때문에 떠올랐을 당시의 신선함을 놓치지 않기 위한 ‘신속정확 형’ 달인 정신이 요구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카카오톡으로 ‘나와의 채팅’ 을 활용해서 아이디어와 관련된 키워드들을 적어둔다. 반면에 어떤 아이디어는 쓰다만 소설처럼, 시작하는 좋은 문장만 떠오르고 도저히 그 뒤는 가늠하기 힘들 때도 있다. 메모를 해두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그 아이디어를 붙잡고 있어봤자 진척되는 것은 거의 없고, 스트레스만 쌓이는 거다. 그런 아이디어는 제 안에서 어떤 힌트나 맥락이 우러나올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리고 꾸준히 피드백하는 ‘정성백배 형’ 달인 정신이 요구된다.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 종류를 잘 구분하는 것이다. 당장 신선할 때 먹어야 할 회를 상온에서 며칠 놔두면 썩어서 먹을 수가 없고, 10시간은 뭉근히 우려내야 할 육수를 급한 마음에 10분, 20분만에 재료를 건져내서는 맹물일 뿐이니까. 이렇게 아이디어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경험으로 체득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체득한 정보를 얼마나 잘 데이터화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일의 효율은 달라진다.

그래도 역시 재료가 좋아야

특히 이 모든 과정의 전제를 잊어서는 안 되는데, 바로 ‘좋은 식재료’ 즉, ‘좋은 아이디어의 원천’ 이다. 아무리 달인의 실력이라 해도, 썩어문드러진 식재료로 건강하고 맛좋은 요리를 해낼 수는 없는 법.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글쟁이라 해도, 그 아이디어의 원천 자체가 진부하고 매번 엇비슷하다면 신선하고 통통 튀는 글을 짓기 힘들 것이다. 좋은 식재료를 얻기 위해 매일 새벽시장에 직접 발품을 파는 요리의 달인처럼, 좋은 아이디어는 부단한 독서, 영화, 갖가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어느 한 분야에서 ‘달인’이 되는 것은 특별한 의미다. 단순히 ‘그것을 뛰어나게 잘 한다.’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이미 그 사람의 인생이 일정 부분 그 일이 되었다는 의미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내지 않더라도, 그냥 그의 삶 자체가 그 일이 되어버리는 일. 그런 의미에서 가난한 시절에 글로 밥 벌어먹어보겠다고 덤비고 있는 나는, 의욕만 앞선 풋내기인 셈이다. 언젠가 달인이 되는 날이 올까. ‘생활의 달인’에 출연하진 못하더라도 내 삶의 일부가 글쓰기가 되는 그런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