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하나쯤 사연 있는 특별한 음식이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문방구 앞에서 친구들과 먹었던 떡볶이, 아버지와 목욕탕을 다녀 오면서 먹었던 국밥, 여자친구와 함께 먹었던 라면처럼.

나에게도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는 특별한 음식이 있다.

어렸을적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에 부모님보다 할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이 크다. 그래서인지 할머니 음식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적당한 조미료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투박한 손맛이 어우러진 요리였다. 세련되거나 젊은 감성의 깔끔한 음식은 아니지만 밖에서 사먹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정(情)이 녹아있었다. 평소 입맛이 까다로운 할아버지 비위 맞추려니 자연스럽게 음식솜씨가 늘어난 탓도 있을게다.

할머니는 많은 음식을 할 줄 아셨는데, 그 중에서도 멸치국수를 특히 자주 해 주셨다. 본인이 좋아하기도 하고. 다만, 나는 평소 면 요리를 좋아해도 소면 삶아 만든 멸치 국수는 별로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얀 종이 속 빼곡히 들어찬 면발들은 늘 할머니의 주방 한 자리를 떡 하니 차지했다. 특별한 레시피랄 것도 없었다. 멸치로 육수 내고, 거기 면을 삶아 흔한 양념장과 간단한 야채. 이게 끝.

얼마전 부산 송정에 위치한 유명한 국수집을 가게 되었다. 유명세를 증명하듯 오픈 전인데도 많은 손님들이 줄 서 있었다. 곧 가게 문이 열리며 멋지게 차려 입은 쉐프가 나와 힘찬 인사와 함께 대기 순번에 따라 안내를 해주었다. 고작 오픈 5분만에 만석이 된 가게를 보니 ‘국수가 다 거기서 거기지’ 했던 평소 내 생각도 잊고 큰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테이블에 착석한 뒤 어떤 이질감이 밀려왔다. 멋진 쉐프의 깔끔한 옷차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히 계산된 인테리어, 미니멀하고 간결한 내부 세팅, 청결하고 세련된 오픈형 주방. 국수는 서민음식이고, 조금 허름한 가게에서 파는 음식이란 내 편견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 이렇다보니 아무래도 여성 손님 숫자가 많이 보였다. 메뉴가 국수일 뿐,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 카페 못지 않았다.

웨이팅 시간에 미리 작성한 주문서를 전달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모두 하나같이 설레는 눈빛으로 음식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주문한 순서대로 음식이 나오는 동시에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소리가 들려왔다. 금새 내 눈앞에도 주문한 음식이 간결하게 차려졌다. 정갈한 그릇에 가지런히 담긴 국수, 노란 숙주와 초록 파의 색감. 일단, 보기에 좋았다. 대체 무슨 맛일까? 호기심과 함께 식욕이 정점에 치달았다. 면발을 마구 흡입하고 싶었지만 맛을 음미하기 위해 욕구를 자제했다. 일단, 국물부터 한 숟갈 떠 올려 머금었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맑은 맛. 훌륭했다. 이윽고 빨아올린 소면은 탱탱했고, 위에 올려진 숙주와 파는 신선해 풍미를 살려주었다.

근데 이상했다. 이토록 완벽에 가까운 음식을 먹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그릇을 다 비운 순간에도 여운이 없었다. 국물은 진한데.

갑자기 할머니가 해주신 국수 맛이 그리워졌다. 조금 깔끔하지 못하면 어떻고 예쁘지 않으면 어떤지. 사발 그릇에 세 곱배기는 너끈히 될 푸짐한 할머니 국수. 투박하고 밋밋한 그 국수가 미친 듯 먹고 싶어졌다. 그땐 왜 그 맛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까? 후회가 들었다. 지금은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데.

어떤 이는 요리에 사랑과 정이 담겨 특별하다고 하지만 내 생각엔 그런 이유가 아닌 것 같다. 그냥 할머니 국수라서, 그래서 다른 거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이제 200일 정도 지났다. 퇴근 후 ‘얼른 씻고 밥무라’ 는 할머니 목소리를 이젠 들을 수 없다.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횟수가 늘었고, 평생 안하던 오늘 뭐 먹지를 고민 한다.

가을을 알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자꾸 할머니가 그리워진다. 보고 싶다. 이젠 어떤 이에게도 느낄 수 없는 맛. 앞으로 영영 그리워할 그 맛.

할머니가 해주신 국수가 먹고 싶다.

 

글쓴이 / 김완규

윤문 / 안창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