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타는 냄새 안나요?
수험생들 ‘긴장 타는’ 냄새..

이 글을 적고 있는 날짜를 기준으로 하면, 2018학년도 수능이 겨우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이후 수능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다.) 올해로 3년째, N수생들의 수능 국어를 맡고 있기에 고등학교 졸업한 지 10년이 되어서도 수능을 체감하며 지내고 있다. 요즘처럼 갑작스럽게 뚝 떨어진 기온 탓에 이른 아침 공기가 사뭇 달라지면, 수험생들은 이때의 냄새를 ‘수능 냄새’라고 부른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수능을 칠 때의 느낌이 온전히 기억나지 않아서 100%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빗대자면 군대에서 이즈음의 시기에 새벽 근무 나갈 때의 그런 냄새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튼, 지금 수험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정신이 아니다. 지나치게 긴장해서 배변 활동이 원활하지 못한 학생도 있고, 무슨 약에 취한 듯 갑자기 마음이 너무 평온하다면서 해탈의 경지에 오른 학생도 있다. 물론 이런 상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롤러코스터 타듯 기복을 보인다. 웬만하면 허튼 조언이나 충고를 하기보다, 그저 ‘그럴 수 있겠다’ 며 얘기를 들어주는 편이 좋다. 이러나저러나, 모든 학생들은 수능을 치게 될 테다. 고사장이 있는 학교의 교문에서 축제도 아니고 응원도 아닌, 낯선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번이 진짜 마지막’ 을 되뇌면서.

공정하거나, 가혹하거나

수험생들의 노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수능 같은 ‘시험’이 학생들을 줄 세우기에는 가장 효율적이고 공정한(?) 방식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의 교육, 정보 빈익빈부익부까지를 고려하면 ‘과연 그것이 공정한가’ 에 대한 의문이 남지만, 적어도 수능이라는 문제를 풀어내는 그 순간만큼은 다른 꼼수나 학연, 지연이 작용하지 않는다. 아, 예전에 말 타던 정모씨처럼 수능 후 합격자 선발 과정에서 비리의 위험이 있기야 하지만.

하지만 동시에 수능은 가혹한 방식이기도 하다. 아무리 철저하고 완벽하려해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인데, 어떤 변수도 허용하지 않는 시험이, 그것도 1년에 겨우 딱 한 번이라니. 잘 치면 대박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시 1년을 더 수험생으로 보내거나, 허무한 기분으로 성에 안 차는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다 자기 복이고 업이지.’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시험의 본질

물론, 거의 대부분의 경우 공부 열심히 한 학생은 시험을 잘 본다. 하지만 현장에서 몇백 명의 학생들을 대면하며 내가 깨달은 시험의 본질은 학습의 양이나 질, 태도 따위가 아니었다. 시험의 본질은 바로, ‘시간’ 이다. 어떻게 공부하고, 얼마나 공부하고, 그런 것들은 시험의 본질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공부, 학습의 본질이다. 시험은 공부와는 다르다. 배웠던 내용으로 제시된 문제를 ‘제한된 시간 내에’ 다 풀어야 하는 것이 시험이다. 특히 국어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 45문제를 80분 이내에 풀고, 답안지 마킹까지 해야 하는데, 만약 시험 풀이 시간을 현행의 2배인 160분으로 한다면, 아주 많은 학생들이 지금 본인의 성적보다 월등히 좋은 성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한때, 나는 ‘시험’ 자체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원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지식의 축적과 세계의 이해, 가치관의 확립 뭐 이런 것들이라면 시간이 뭐 그리 중요하냔 말이다. 얼마나 빨리 읽고, 얼마나 빨리 답을 찍어내는가 하는 것이, 그 ‘시험만을 위한 전략’ 이 전혀 교육적이지도, 합목적적이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한때, 시험을 혐오하면서, 시험을 잘 치는 방법을 가르쳤다. 혐오를 다루는 방법을.

삶의 본질

그런 회의심은 당황스럽게도 내 삶에까지 이어졌다. 학생들이 치는 시험의 본질이 시간이고, 그래서 정해진 시간 내에 얼마나 성과를 내는가, 하는 것이라면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능국어 시험 시간 80분보다야 훨씬 길지만, 어쨌든 우리도 정해진 삶의 시간 내에 얼마나 괜찮은 삶을 사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들이니까.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나는 초조해졌다. 보자… 나는 내 삶의 문제들을 얼마나 많이 풀었나, 같이 출발한 동갑내기 친구들은 얼마나 앞서 있나, 나는 왜 이리 열등생인가.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들은, 동시에 우리네 삶이라는 이유로 반박될 수 있었다. 수능 시험은 정해진 시험 시간을 보장해주지만, 우리네 삶은 그렇지 않다. 평균기대수명이 늘어서 100세 시대니, 120세 시대니 말은 많지만 삶이라는 게 살아보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서, 어쩌면 당장 몇 초, 몇 분 후에 갑작스럽게 끝나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까 애초에 수능 시험따위와 삶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해선 안 되는 거였다. 수능 시험의 시간이 ‘보장된 미래’ 라면, 우리네 삶의 시간은 ‘언제나 현재’ 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미래의 언제까지 무엇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은 사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무효한 약속, 허공에다 날리는 세도우 복싱인 셈이다.

그러므로 오직 현재, 지금, 순간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삶이라는 시험은 매 순간 치러지고, 종료된다. 각자의 시험은 각자 채점한다. 채점을 남에게 맡기는 순간, 우리는 다이나믹 듀오의 데뷔곡 Ring My Bell 가사처럼, ‘얼짱의 노예, 학점의 노예, 월급의 노예’가 되고 만다. 물론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그럽거나 엄격할 때도, 또 때로는 공정할 때도 있다. 뭐가 됐건 상관없다. 본인의 삶, 본인이 책임지고 살면 된다.

이런 생각들이 구구절절 드는 이 새벽, 그러나 나는 수능을 열흘 앞둔 수험생들에게 이런 얘기들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며칠 굶은 이에게 별빛의 낭만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잔인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나는 그저 역설법과 비유법, 초점 화자, 음운 변동과 이형태 따위의 단단하고 실질적인 지식을 전해줄 것이다. 지금 그들에겐 단지 그것만이 필요하니까. 밥을 먹느라 별을 쳐다보지 못하는 날이 며칠 있다 하더라도, 별은 개의치 않고 반짝인다. 수능 냄새에 파묻혀있는 그 수험생들, 지금은 삶보다 시험을 중요하게 생각해도 된다. 아무리 삶을 잊고 살아도, 삶은 거기 있으니까. 그들의 시험도 결국 삶의 일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