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엔, 모든 게 멀어져 가는 줄로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현존’ – 즉 ‘현재에 존재하지’ 못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태어나고서부터 줄곧 더 빨리 자라기를 바라며 미래를 꿈꾸다가, 문득 ‘너무 빨리 시간이 흘러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과거를 자꾸 들춰본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군상들 중에서도, 나처럼 애늙은이 행세를 해온 인간은 보통, 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살아보며 청승을 떠는 버릇이 있는 편이다.

내 이십대가 딱 그랬다. 아직 군대도 가기 전, 그러니까 이십대라는 문을 막 열어젖힌 그 순간부터 나는 노래방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를 불러댔다. 우습게도 가끔 울컥하는 바람에 노래를 이어가지 못하기도 했다. 겨우 ‘스물 몇 살의 나’ 가 상상했던 ‘서른 즈음의 나’ 는 도대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불쌍했길래. 겪어보기도 전에 저 혼자 미래를 앞당겨 살았던 탓에, 내 이십대는 늘 고단하고 걱정이 많았다. 청춘(靑春)의 푸르름이 마치 푸른 멍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 시절 나는, 김광석의 노래 가사처럼 서른 즈음이란 모든 게 멀어져 가는 줄로만 알았다.

진짜 내일 모레면 서른

그랬던 내가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이러저러한 일들로 밥을 벌어먹고 살다가, 이제 진짜 내일 모레면 서른이 될 시기에 이르렀다. 며칠 전엔 스물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했고, 이제 약 두 달 뒤면, 나는 서른이 된다. 이십대, 그 시절의 내 청승대로라면 이제 내 인생은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없어야 하는데, 정작 나는 아주 건강하고 활기차다. 물론 몸무게가 15kg쯤 더 불어났고,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함은 얼마간 사라져버렸지만, 편협했던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내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 괴로움 없이 겸손하게 배울 수 있는 자세도 갖추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제 와 이십대를 돌이켜보면, 막 억울해지는 거다. 이러나저러나 살다보면 결국 서른이 될 텐데, 되어보고 나니 내 서른 즈음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뭣하러 나는 내 이십대에 서른을 위해 슬퍼했나. 차라리 그럴 시간에 이십대의 객기나 무모함, 열정을 더 불태울 걸.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처럼, 과거의 나를 차원의 먼발치에서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외쳐주고 싶다. “야! 그럴 시간에 나가서 어디든 여행이나 가! 방구석에서 청승 떨지 말고!!”

아홉수, 끝이면서 시작인 어떤 경계에서

흔히들, 아홉수엔 조심하라고 한다. 결혼, 이사 같은 개인이나 가족의 큰 변화를 피하라고. 난 그런 걸 딱히 신경 쓰거나 귀담아 듣는 편은 아니지만, 어떻게 살다보니 내 스물아홉엔 결혼도, 이사도 없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쁜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하려는 노력 없이도 여러 가지 일들을 할 기회가 쏟아졌고, 일 욕심 반, 돈 욕심 반으로 거의 대부분의 일들을 해냈다. 하루 2~3시간 밖에 자지 못하는 날들이 며칠, 몇 주간 이어지기도 했고, 멘토라고 불러도 될 만한 분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보니, 스물아홉이 이제 겨우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당장 12월 초까지도 바쁠 예정이라, 정말 내 인생의 스물아홉은 ‘아홉수’ 라는 걸 의식할 겨를도 없이 지나가버렸다.

9는 그 자체로 한 자리 자연수의 끝이면서 동시에 두 자리 자연수의 시작인 경계에 선 수다. 실질적으로 우리 나이에서는 앞자리가 바뀌는 것을 불혹, 지천명, 이순 같은 이름으로 부르면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반면에, 뒷자리에는 9를 제외하곤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아마, 아홉수 다음엔 결국 다시 새로운 ‘대’의 0부터 시작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내 ‘이십대’ 는 이제 막을 내렸고, 곧 ‘삼십대’의 막이 오를 차례다. 서른, 스스로 우뚝 서 자립할 때라는 ‘이립(而立)’ 으로 불리는 바로 그 삼십대가.

이제야 좀 사람답게, 나답게

내 이십대를 그렇게 보내고 난 후, 내 스물아홉을 이렇게 보내고 난 후, 이제야 좀 사람답게, 나답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서른이니까, 이제 시작이니까. 서른엔, 서른을 살아야지. 서른둘엔 서른둘을 살고, 마흔은 마흔이 되었을 때 살아보면 되니까! 요새 유행하는 YOLO, 뭐 그런 건 아니다. 멀든 가깝든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계획하는 건 필요하니까. 다만, 지금에 충실하지 않으면, 또 후회하게 될 테니까.

해서, 서른을 앞두고 있는 나는 당장 2018년부터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또 포기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에 도전할 계획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다이어리를 쓰고 싶어졌고, 처음으로 버킷리스트를 적었다. 서른을 이렇게 기대하고 설레어할 줄, 스물 몇 살의 나는 결코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 어리석었던 ‘이십대의 나’여, 네가 그토록 걱정하던 내가 곧 서른이 된다. 나도 서른이 된다. 10년쯤 뒤, ‘불혹의 나’여, 걱정 말고 기다리게, 나 열심히 살아서 너를 만나러 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