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이 미덕이던 시절

“다리가 부러져도 학교는 가라.” 지금에 와서 읽어보면 거의 학대에 가까운 이 말이,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그런 대로 통용되곤 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고,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거니까,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도였을 거다. 한편으로는, 꾀병을 부리며 제 할 일을 하지 않으려는 어린 자식에게 극단적으로 강한 처방을 내리기 위한 엄포이기도 했을 것이고. 어느 쪽이든, 부모로서 자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같았다. 최선을 다하라는 것. 성실하라는 것. 할 수 있는 데까지, 쥐어짜내라는 것.

‘청년 문제’ 에 대한 라디오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청년들, 대학 교수와 관련 기관장, 해외의 사례까지 취재하며 내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제 최선이 미덕이던 시절은 끝났다는 것이다. 성과를 내기 위해, 아니, 혹은 성과와 무관하게 어쨌든 한 몸 바쳐 제 일을 해내야만 하는 강박은, 이제 더 이상 보편적인 삶의 패러다임이 아니다.

근대화와 성찰적 근대화, 그리고 지금.

심도 깊은 사회학적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또 그럴 만한 식견도 없지만), 고속 성장을 이뤘던 한국의 90년대, 그러니까 IMF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우리 사회의 미덕은 의심의 여지없이 최선, 성실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거시적으로는 국가경제 재건에 일조했다는 국민적 자긍심이었고, 미시적으로는 지금의 최선이 미래의 보상을 가져다주리라는 믿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최선을 다 하면, 사회에서 인정받고, 적어도 몇 년 내에 집을 살 수 있을 만한 연봉을 벌고, 거기다 다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일으키고 있다는 자긍심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IMF를 맞고, 그 이후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나라는 뒤늦은 성찰적 근대화를 겪게 되었다. 더 이상 최선은 내 삶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최선을 다하는 모든 이가 인정받지도 못했고, 연봉이라고 받는 돈은 숨만 쉬고 고스란히 모아도 10년은 더 지나야 사람 살 만한 집을 겨우 살 정도였다. 더 이상 나의 최선이 국가를 부흥하는데 큰 기여를 하는지 체감할 수 없었고, 심지어 이제는 내가 왜 국가를 위해야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 빚과 절망, 실망, 부정부패와, 거짓, 비열… 뭐 그런 염세주의까지 더해지면서, 근대화를 이루던 최선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이제 우리는 다시,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대해 처음부터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삶은 계속되고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 우리의 생계는 여유롭지 못했다. ‘잠깐만, 나 지금 생각 좀 해볼게. 몇 주만, 아니, 며칠만.’ 그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장 몇 분 뒤의 일을 해내지 못하면 생계를 유지하는 데 빨간불이 켜질 이들이 사회의 대다수였다. 달리 비빌 언덕도 없으니, 그들은 그저, 해왔던 대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성찰적 근대화는, 그렇게 성찰 없이, 의구심만 가득한 채로 막을 내렸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그러다보니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생의 어느 지점에 이르러 멈춰 설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라는 답도 없는 근본적인 질문을, 실컷 다 살아놓고, 최선을 다해놓고 나서야 하게 되는 거다. 그러면서 만족스러우면 다행인데, 뭔가 서럽고 만족스럽지 못했을 때, 우리는 배신감을 느낀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는데, 왜 결과는 최선이 아닌가에 대해서. 스스로를 탓하고, 세상을 원망한다.

멈춰 섰다면, 거기서부터 시작

그렇게 지금에 이르렀다. 당신도, 나도.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 것이다. 그 덕분에 어떤 위치에서, 얼마만큼의 돈을 벌고, 어떤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고. 만약 당신도 문득, 멈춰 서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축하한다. 이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참이니까.

나이라는 게, 삶이라는 게, 매 순간 꼼꼼히 들여다보며 확인하고 쌓이는 게 아니다. 그저 살다보면 저는 저대로 차곡차곡 쌓이고,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오는 식이라서,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면 내 삶인데도 낯설고 새로운 면들이 드러나곤 한다.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던 인디언이 문득 멈춰 서서 너무 빨리 달리는 탓에 혹시 제 영혼이 길을 잃을까 봐 기다린다는 이야기처럼, 우리도 그렇게 멈춰 서는 날들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 이유로, 이 시대의 미덕은 이제 최선이 아니라, 멈춤일지도 모른다. 왜 살아야 하는지 묻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그 최선을 맹신하지 말고, 이제 멈춰 서 물어야 할 때다. 뭔가 있었는데, 내가 잊은 뭔가가, 하면서 자꾸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