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가 유독 춥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었나? 유독 허기가 진다. 아, 오늘은 기필코 꼭 그 집에서 한 그릇 해야겠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40년 전통의 유명한 꼬리곰탕 집.

진하고 고소한 냄새, 냄새를 넘어 향기를 풍기며 육수를 삶고 있는 가마솥.

아직 한 번도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지나칠 때마다 위장과 침샘을 미친 듯 자극한다. 지갑을 열어보니 딱 현금 만원. 카드는 한도가 간당간당 한지라 불안해서 못쓰겠고… 그래, 오늘 내일 담배는 포기하자. 꼬리곰탕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곰탕 특 사이즈는 먹겠구나.

 

칼바람이 분다. 왠지 더 추운 게 요즘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기도… 곰탕 집 까지는 버스 정류장에서 100미터 남짓. 으슬으슬한 게 몸 상태는 죽을 맛인데 이상하다. 발걸음이 너무 가볍다. 그렇게 먹고 싶었나? 어쨌든 빨리 가자.

가게 유리에 서린 김이 하얗게 우러난 곰탕 국물 같다. 유리 표면에 쓰여진 메뉴와 가격. 흰 바탕에 빨간 궁서체 글씨가 국물 위에 얹어진 다진 양념과 다진 파처럼 보인다.

문 앞에서 잠깐 뜸을 들이고, 딸랑딸랑 종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선다. 밖에서 맡던 것보다 좀 더 정리되고 깔끔한 곰탕 냄새. 기분 좋은 말소리. 어서 오세요. 편한 자리에 앉으세요.

계획대로 곰탕 특을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가게를 둘러본다. 오늘따라 손님이 하나도 없네? 겨울이라 그런가? 가게 안이 왜 이렇게 뿌옇지? 환기가 잘 안되나? 아, 뽀얀 뼈 국물도 좋지만 맑은 고기 국물이면 더 좋겠다.

응? 내가 여길 와봤던가?

웬 잡생각을 이리 하는지. 싸구려처럼 보이는 갈색 사기그릇 안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섞박지와 배추김치가 섞여있다. 여기는 배추김치가 따로 없겠구나. 김치 국물이 좀 부족한 거 같은데… 좀 더 달라고 해서 곰탕에 부어 먹어야지. 나오자마자 아무것도 넣지 말고 국물부터 먼저 한 모금하면 많이 뜨거울까? 그 다음 파 채는 적당히 넣고 약간 싱거울테니 소금 약간. 고기는 먼저 건져서 소금에 찍어 먹고 김칫국물은 반 정도 먹고 넣자. 그 5분도 안 되는 기다림 동안 뇌가 풀가동되는 느낌이다. 식사 나왔습니다. 정말, 웬 잡생각을 이리 하는지.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나왔다. 드디어 나왔다.

고기 베이스의 투명한 기름이 동동 떠있는 맑은 육수. 특이라 그런지 고기도 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이 깔려있다. 고기 결과 반대로 썰어놓은 수육은 흡사 주상절리의 단면. 자, 이제 생각은 그만하고 직전까지 치밀하게 세웠던 계획을 드디어 실행할 때다.

뚝배기를 덥석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뜨거운 뚝배기의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흥분 상태다. 혀끝에 막 닿은 국물의 첫 맛. 진한 소고기 향이 돌고 밍밍한 듯 하지만 캐러멜 같기도 한 단맛. 아니지 이건 감칠맛이라 해야겠지? 역시 진부하지만 ‘깊다’ 말고는 적당한 표현이 없다. 굳이 찾아야 한다면 ‘약을 탔나?’ 정도? 뒤따라 코로 들어오는 알싸한 파향은 기름진 고깃국의 느끼함과 어울려 맛을 풍족하게 만든다.

입 속에 잠깐 머금고 맛과 향을 음미한다. 이내 목구멍을 타고 넘는 뜨끈한 기운에 얼어있던 온몸이 풀리는, 이 느낌이란…

 

응?

 

뭐지?

 

정전인가?

 

갑자기 주변이 깜깜해졌다 이내 다시 밝아진다. 한기가 급격하게 몸을 파고든다.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익숙한 벽지 얼룩과 형광등.

 

아, 꿈이구나.

 

“아…. 씨… 빨리 먹을걸”

 

– 15년 전 서울 청량리 가스 전기 끊긴 1월 어느 날 자취방에서-

 

 

글쓴이 : 장재영

윤문 : 안창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