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끝 무렵, 나는 인도 여행을 하고 있었다. 가이드 책과 현지 주민들의 정보에 의존한 채로. 요즘에야 어딜 가도 로밍이 되고 구글맵 하나면 못 찾아가는데 없다지만 그땐 3G 통신조차 나오지 않았을 때다. 당시에 비하면 지금 세상은 정말 여행하기 편해졌다. 웹 서칭을 조금만 거쳐도 무수한 여행지 정보가 쏟아지고, 저가항공의 출현으로 비용적인 부담마저 줄었다. 숙소 또한 저렴한 셰어 하우스를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 잘 몰라서 혹은 돈이 없어서 여행 못 간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 버렸다.

 

그런 옛말 같은 2개월의 인도 여행 동안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인터넷 방을 찾아야 했다. 노트북은 부자들이나 가질 수 있는 것이었고 설령 있다 한들 와이파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터넷 방은 우리나라 PC방과 유사한 구조였는데 정작 필요한 부분에서 너무 달랐다. 속도는 말도 못 하게 느렸고 한글 타자를 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으니. 앞서 이용했던 여행자가 한글 패치를 깔아 둔 PC를 찾는다면 운수 대통한 날이었다.

 

친구와 문서 교류는 이메일로 주고받았다. 그 마저도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탓에 밤낮없이 자주 전기가 나가 버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인터넷 방에서 전기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그냥 포기하고 군자의 마음으로 가이드 책을 펴야 했다. 여행 선배들이 정리해놓은 백과사전 두께의 가이드 책을 샅샅이 들여다보며 다음 목적지 여행 계획을 짜곤 했다.

 

숙소 예약도 난관이었다. 현지 도착해서 직접 발 품을 팔아 방을 구하는 게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Do you have room?.”

영어라고는 ‘HI’ 한마디 내뱉는 것도 부끄러워하던 성격의 내가 낯선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저 말을 얼마나 외쳐댔는지. 요즘은 스마트폰 클릭 몇 번이면 숙박비 결제까지 이루어지는데 말이다.

 

그 시절 여행자들에겐 어쩔 수 없는 꼰대 기질이 있다. 요즘 친구들에게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뇌까리고 싶어 지는 거다. 너네는 정말 편하게 여행하고 있는 거야.  마치 대단한 전설쯤 되는냥 조미료도 좀 쳐가며 거창한 여행기를 떠들고 싶어 질 때 즈음, 아버지께서 그야말로 전래동화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강삿갓이라는 큰할아버지에 대해. 우리 할아버지 사촌 형님 되시는 조선시대 사람. 아버지께는 백부님 되시겠다.

 

그분은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시며 시조 한편 읊조리고 노잣돈을 받아 끼니를 때우셨다. 바람 흘러가는 대로 살다 가끔 할아버지 집에 들르곤 하셨는데 할아버지는 반기지 않으셨다. 나름 양반 집안 체면이 있는데 정처 없이 다니는 강삿갓 형님이 한량처럼 보였겠지. 결국 발길 닿는 대로 떠돌다 객사하셔서 돌아가신 날짜마저 알 수 없단다.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할머니께 전해 들으셨다. 성함도 알 수 없어 강삿갓으로만 기억한다고. 그래도 큰할아버지께서 오시는 날이면 성심성의껏 쌀밥을 지어 주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이 구전 동화 같은 이야기 끝에 아버지에게 한 가지 당부를 하셨다. 돌아가신 날짜를 모르는 조상은 음력 9월 9일 제사를 지내 드리는데 이제 너희가 제사를 모시라고. 미혼으로 혼자 돌아다니셨기에 제를 모실 처자식이 당연히 없으니.

 

이야기를 듣고 내 안에서 여러 물음이 떠올랐다. 발전된 이 시대에도 혼자 외지를 다니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조선시대에 자유롭게 여행을 한다는 건 대체 무슨 배짱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혼자 두렵지 않으셨나? 그 역마의 기질을 내게 대물림해주신 건가? 돌아가신지 20년 넘게 지난 할머니를 깨워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편, 나는 한 번 본 적도 없는 강삿갓 할아버지가 어쩐지 너무 보고 싶어 졌고 문득 그리움마저 느꼈다. 만일 지금 뵐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나는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을까.

 

5G까지 나오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2017년. 나는 다시 긴 여행을 준비 중이다.

 

한 달이라는 휴식 기간이 내게 주어졌을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결심했다. 직장인에게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여행이다. 문제는 오로지 하나.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뿐. 어린 시절을 되새길 수 있는 인도, 꿈에 그리던 남미나 아프리카. 고민 끝에 남미로 정했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떠나야 열정의 대륙 남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직 내 열정이 살아있을 때 말이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총 5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남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한 달도 너무 짧다고 말하겠지. 한층 부지런히 움직일 계획이다. 그간의 여행 노하우를 모두 쏟아부어 세밀하고 빡빡하게.

 

9년 만의 장기 배낭여행이다. 세월만큼 다녔고 여행 내공도 만만찮게 쌓였다. 준비 방식이 발전된 세상에서 온라인을 통해 웬만한 것은 다 예약할 수 있다. 이젠 시간과 눈치 싸움이다. 누가 빨리 저렴한 티켓을 예약하느냐가 요즘 여행의 관건. 직장 생활하며 그 눈칫밥도 무지하게 늘었다. 자신 있다, 이번 여행.

 

무사귀환을 한다면 나는 올 12월 초 다시 한국 땅에 돌아오게 된다. 출발 한 달 남은 시점에 벌써부터 심장이 마구 뛴다. 무엇보다 이젠 강삿갓 할아버지의 피가 내 몸에도 흐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은가? 가이드 책조차 없던 시절에 조선을 누빈 분이다. 스마트 폰에 앱, GPS, 와이파이가 갖추어진 세상에서 혼자 남미를 못 누빌 것 무엇이더냐. 강삿갓 할아버지의 인도를 기대하며, 호기롭게 떠나보련다. 꼭 자기 같은 손녀딸 무탈하게 보호해 주시겠지!

 

Buena suerte.

 

 

글쓴이 : 칸투칸 직원_강하렴

윤문 : 안창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