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내가 살찌는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한 여름 폭염에는 입맛이 없다가 선선한 가을이 되면 입맛이 돌아온다고 한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일조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햇빛을 충분히 쬐지 못하게 되면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의 분비가 감소하면서 식욕이 증가한다고 하지만.. 잠깐, 나는 여름 내도록 맛 집을 찾아다니지 않았던가!
솔직히 말해 식욕이 증가하는 시기가 사시사철이라 해도 넘치는 식탐을 계절 탓으로 돌리기엔 가을만 한 게 없다. 마침맞게 민족 대명절 한가위도 이 계절에 한자리 크게 차지하고 있으니, 그렇다. 나의 식탐은 빼박 계절 탓이다.

본디 음식에는 제철이란 것이 있는데 가을 초입, 찬 바람 불기 시작하면 한 평생 슬로건인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를 내걸고 실컷 먹어둬야 하는 음식이 있다. 8월 말 즈음부터 횟집 앞을 지나다 보면 ‘전어 입하’ 현수막이나 POP가 큼지막하게 붙어있는 걸 볼 수 있다. 고된 시집살이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올 만큼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는 생선이라니, 그 맛은 어떤 맛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먹어봐야 내가 아는 그 맛이겠지만, 올해 전어는 작년 전어랑 또 다르고 어제 전어는 오늘 전어랑 또 다른 맛이니 먹어보기로 하자.

<모듬회에 서비스로 나온 전어- 전어는 다른 생선과 달리 파와 깨가 송송 뿌려져 나온다. >

 

전어는 여름철 충분한 먹이를 먹고 성장해 가을이 되면 통통하게 살과 기름이 올라 맛이 절정에 이른다. 늦여름에 먹는 전어는 부드럽고 초가을에 먹는 전어는 고소하다는 얘길 들었는데, 8월 말쯤 횟집에서 전어를 맛본 적이 있다. 늦 여름 전어라서 그런 건지 모듬회에 서비스로 나온 전어라 그런 건지 수돗물 맛이랄까, 비릿한 쇠맛이 감돌았다. 괜히 ‘가을’ 전어라고 하는 게 아닌가 보다.

본디 가시가 많고 못생겨서 인기가 없던 전어가 가을 철 반드시 먹어야 하는 생선으로 자리매김 한 데에는 ‘돌아온 며느리’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전어구이의 냄새를 의식해서 맡아본 적도 없거니와 횟집에서 맡던 전어구이 냄새 또한 특별한 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때문에 구이보다는 회를 추천하고 싶다. 사실 제철 생선은 회로 즐겨야 가장 좋기도 하고.

어릴 땐 회를 즐기지 않았다. 날 것의 비릿함이 싫었고  단맛도 쓴맛도 아닌 밍밍한 맛. 약간 질기고 퍼석한데 물컹하기도 한 희한한 식감이라 생각했다. 내겐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것 같은 회에서 단맛이나 고소한 맛을 찾아내는 사람들은 절대 미각이라도 있는 걸까, 의아했다.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버지는 해안 도시인 부산에 정착하셨고, 그래서인지 유독  생선을 좋아하셨다. 우리 집엔 생선요리가 끊이지 않았고 질려버린 나는 생선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거, 맞다. 그렇게 나는 육식파로 성장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선도 곧잘 먹는다.

이렇듯 예전에 먹지 않던 음식들을 나이가 들면서 찾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노화로 인한 호르몬의 변화나 단순한 입맛의 변화라고 단정 짓긴 어렵다. 본디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선호하게 되지만 유독 음식에서는 익숙함보다 낯설고 새로운 것을 탐하게 된다. 초식이나 육식 등 한정된 자원만 먹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먹을 수 있는 모든 걸 찾아먹는 잡식성  동물인데다  매일, 같은 음식을 먹는 지루함을 견딜 수 없다 보니 맛에 대한 스팩트럼을 넓혀가는 게 아닐까. 혹자는 고기는 ‘쌈장’맛, 회는 ‘초장’맛으로 먹는다고도 한다. 음식 본연의 맛이 자극적인 장맛에 가려진다는 건 안타깝지만 장맛의 강한 신경 자극이 날 생선의 비릿한 맛을 둔화시켜 맛있는 맛으로 전해질 수 있다고 하니 이것 또한 나쁘지 않다.

고백하건데나 또한 회는 ‘초장’맛으로 먹어왔다. 그런 내가 초장이나 간장에 의존하지 않고도 본연의 고소한 풍미를 맛보게 된 최초의 생선이 바로  가을 전어였다.
친구들이 하도 맛있다길래, 그래 먹어나 보자며 호기롭게 찾아간 왕십리의 어느 횟집.길가나 다름없는 횟집 앞의 파란 테이블에 앉아 소주잔 기울이며 먹은 전어는 내가 여태껏 먹어 본 여느 생선과는 확연히 달랐다. 푸르스름한 껍질과 뼈를 발라내지 않은 채 썰어져 나온 통통한 전어를 베어 물면 자근자근 씹히는 뼈 사이의 쫄깃한 육즙에서 고소함이 터져 나왔다. 술이 절로 들어갔다.

그후로 구이나 회, 무침 등 가리지 않고 가을이 오면 전어를 탐했다. 전어가 먹고 싶어 가을이 기다려기지도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어의 계절이 돌아왔고, 전어 전어 노래를 불러대니 아버지가 동네 횟집에서 전어를 사오셨다. 이번엔 세꼬시가 아닌 포 뜬 전어였다.  세꼬시에서는 깨가 씹히는 듯한 고소한 맛이 난다면, 포를 뜬 전어에선 기름진 단맛이 났다. 한결 부드러운 맛이었다. 전어를 두세점 깻잎에 올려 청양고추와 생마늘을 곁들이면 부드럽고 고소한 전어의 풍미에 알싸하게 매운 통각이 더해져 엔도르핀 대잔치가 벌어진다. 수확의 계절, 바다의 맛. 그렇게 입안에서 펼쳐지는 황홀경을 마음껏 즐긴다.

전어는 7-8월에는 맛이 살짝 비릿하고 11월이 지나면 뼈가 억세어진다고 하니 전어의 맛은 지금이 최적기라 할수있다.돌아온 며느리가 다시  떠나기 전에, 올 가을에는 전어를 먹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