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건조식품을 달리 보게 된 계기이자 엄마의 식품건조기 앓이의 발단은 막내 이모로부터 건네받은 고구마 말랭이였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음식의 제1 조건은 신선함 이었기에 파리하게 말라비틀어진 형태는 그게 무엇이든 간에 영 꺼림칙 했다. 그렇다 해도 무릇 고구마킬러란 조리방식을 가리지 아니하고 일단 입에 집어넣고 보는 법. 한입 베어 물자 호박 고구마의 고소함과 달짝지근함이 입안에 쩌억-하고 들러붙는다.

“아이 이멍 이그므양 앙졍마이쌰”
이빨이며 혓바닥이며 사정없이 들러붙어 치근덕 거리는 달큼함에 외계어가 튀어나왔다. 직역하면 “아니 이모 이거 뭐야 완전 맛있어”라는 뜻이 되겠다. 그렇게 나는 고구마 말랭이와 사랑에 빠졌고 이모네에 갈 때마다 수제 고구마 말랭이를 한 웅큼 집어왔다.

우리 막내 이모는 식품 건조기가 다했다고 하지 않는 사람이다. 식품건조기를 샀지 내가. 로 시작해서 이렇게 달고 맛있는 고구마 말랭이는 신선한 원물도 아니요 식품 건조기의 성능도 아니요 내가 잘 말렸지 아무나 못해 기승전 내가 제일 잘 나가 빰빠빠빠로 끝난다. 익숙한 패턴이다. 이제 그런 이모가 귀엽기까지 하다. 샐쭉하게 듣고 있던 엄마는 내심 부러워서 홈쇼핑에서 식품건조기를 볼 때마다 나를 부르곤 했다.

그렇게 택배아저씨가 커다란 박스를 전해주심으로써 엄마의 욕망은 채워졌고 사전 정보 없이 욕망만 앞선 엄마의 첫 고구마 말랭이는 대 실패였다. 수분 따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라도 있는 듯 앙상하기 그지없는 몰골에 칩을 흉내 낸 듯한 모양새는 바삭거림은 커녕 단단하기만 했다. 대 실패에 이은 감말랭이는 그럭저럭 먹을 만 했지만 아빠나 나에게 그닥 인기는 없었다.

그렇게 식품건조기는 박스 속에 방치된 채로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고 일 년쯤 지나 심기일전한 엄마에 의해 재기할 수 있었다. 작년 추석 즈음, 냉장고 과일칸을 모조리 차지해버린 덩치 큰 배 무리를 처치해야 할 때가 왔고 이번에는 성공적인 배 말랭이와 사과 말랭이를 만들어 냈다.

다시 한번 고백하건대 나는 말린 과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생과 포도는 좋아하지만 건포도는 좋아하지 않는다. 뭐든 없어서 못 먹던 식탐 대마왕 시절에도 식빵에 엉겨 붙은 건포도를 손가락으로 떼어내 버리곤 했다. 물컹하고 질척이는 요상한 단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건포도를 맛있다며 집어먹는 사람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공된 단맛을 좋아하지 않고 초딩 입맛과는 거리가 먼 식성이지만, 여전히 건포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 음식이 있다. 하지만 세월의 변화에 따라 식성도 변하는 법. 그렇다. 이제 몸에 좋은 것을 찾게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생과일로 섭취할 때 보다 영양소도 풍부하고 어디서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쫄깃한 과일 말랭이의 세계를 영접한 이후로는 나도 모르게 ‘건렐루야’를 외치고 있었다.

최근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과자와 인스턴트를 끊고 나니 주전부리 생각이 간절했다. 그때 마침 배 한 박스와 사과가 집으로 배달되어 왔고 고구마 말랭이의 온상인 이모네에서 가져온 것이라 했다.

“엄마, 말랭이 만들자” 이번엔 내가 주도했다.
배와 사과를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기고 썰어낸다. 신선한 과일을 말리기엔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 몇개 집어 맛을 보았다. 어떤 건 슴슴하니 수분감만 느껴지고 어떤 건 당도가 꽉 차서 달다. 단맛이 덜한 과일도 말리면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당도가 높아진다. 젤리처럼 말랑하진 않지만 잔뜩 오그라든 말랭이를 한입 베어 물면 유기산이 침샘을 자극해 쫄깃한 식감이 살아나고 달콤함이 배가된다. 입안에서 요동치는 타액과 이빨과 잇몸을 사정없이 감싸는 달큼함이 만나 감칠맛이 배어난다.

 

< 한입만..  우리집 노견 ‘보리’의 애절한 눈빛 >

 

하루 종일 사무실 붙박이를 하다 보면 오후쯤 되면 혈당이 저하되고 좀비처럼 당을 찾아 나서게 되는데, 말린 과일은 생과의 5~20배 정도 농축되어 영양분이 풍부해지는 건 물론, 빠른 에너지 전환이 가능해 피로회복도 돕는다니 직장인에게 이만한 간식이 없다. 정신을 차려보면 한 봉지를 다 비우기 일쑤이니 다이어트  간식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본인 한정)

어쩌다 보니 건조과일 예찬론자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최근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단연, 엄마와 함께 만들어 먹은 과일 말랭이라 하겠다. 이모네와 오빠네에 나눠주고 나면 금세 바닥을 드러낼 양이지만 늘 그랬듯 나눠 받은 만큼 나눠 주게 된다.

음식에는 맛뿐만이 아니라 추억도 배어들게 되는데,  달큼한 건조과일을 먹을 때 마다 오래도록 엄마와 이모가 생각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