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편식이 심했다. 처음 보는 요상한 재료들은 어떻게 요리를 해도 골라내어 먹지 않아서 엄마가 무척 힘들어하셨다. 아이 입맛은 보통 엄마를 따라간다던데 나는 보통이 아니었나보다. 엄마는 못 먹는 음식이 없었고, 요리도 수준급이셨으니까. 가족 모두 버섯을 좋아했는데 나는 아니었다. 특유의 식감이 싫었다. 브로콜리도 식감 때문에 안 먹었다. 맹맹한 맛도 별로였고. 카레에 들어간 물컹한 당근도 싫어했다. 어이없게도 생당근은 좋아했으면서 말이다. 생각해보니 물컹한 식감을 싫어했던 것 같다.

그 입맛 그대로 10대를 지나 대학생이 된 나는 엄마 곁을 떠나 생활하게 되었다. 엄마는 많이 걱정하셨다. 편식이 심해 매일 먹고 싶은 것만 먹다가 건강을 해치는 건 아닐까 하는. 대학생활 초반에는 정말 그랬다.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실컷 편식하며 지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새로운 맛에 눈을 떴다. 스물에 처음 먹어본 소곱창. 소의 내장이라는 말에 기겁했지만 어쩐지 자꾸 궁금해 한 입 먹어보는 순간 고소한 그 맛에 매료되고 만 것이다. 이후 안 먹어 본, 혹은 싫어하던 음식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예를 더 들면 맑은 매운탕(지리) 같은 음식. 나는 원래 물에 빠진 생선을 싫어했다. 포항에서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물회도 싫어했을 정도다. 생선은 오로지 구이나 회로만 즐겼다. 친구의 강력한 추천에 맑은 매운탕을 먹어보고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랬다. 이젠 생선찜이나 조림류를 하나씩 정복 중이다. 생선알도 싫어했던지라 알밥도 못먹었는데 지금은 뚝딱 한 그릇 시원하게 비운다. 하도 안 먹어 엄마 속 썩이던 버섯은 지금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식재료가 되었다.

얼마 전에는 도라지 정과를 하나 먹어볼 기회가 있었다. 어린 시절 같아서는 결코 맛조차 보려 하지 않았겠지만 이젠 처음 보는 음식도 별 두려움 없이 입에 넣고 본다. 생각보다 쓰지 않고 맛있었다. 꼭 호박엿 같은 느낌이었달까. 신기했다.

자라며 내 입맛이 변한 걸까?

아니, 뒤돌아보니 실은 별 거 아니었다.

먹지 못했던 음식들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친구가 먹어서, 남자친구가 먹어서,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서, 나 빼고 다른 모두가 너무 맛있게 먹는 것 같으니까 그 맛이 궁금해서. 그렇게 별 거 아닌 이유들로 하나 둘 도전하다 보니 어느새 잡식성이 되어 버렸다.

물론 여전히 못 먹는 것들도 많다. 특유의 향 때문에 도저히 친해지기 힘든 청국장부터, 내게만 누린내가 두배로 느껴지는 듯한 돼지곱창, 소금구이로 먹으면 역한 느낌이 드는 장어, 물컹함에 내공이 쌓여 도전했지만 끝내 그 식감만큼은 이겨낼 수 없던 닭발.

괜찮다. 모두 성공하진 못했어도 내 한계는 더 넓어졌으니까.

어쩌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유들로 오랫동안 입맛을 옭아매고 있었던 것 같다. 단순한 이유들. 식감이 낯설어서, 향이 별로여서, 모양이 이상해서. 목으로 넘기기도 전에 뱉어버리거나 애초에 입에 넣어보는 것 조차 거부하곤 했다. 그냥 한 번 먹어보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못 먹을 건 없지. 한 번 먹어보고 내 취향이 아니면 말고 맛있으면 계속 먹는거지. 싫으면 어떻고 좋으면 어때? 일단 먹어봐야 알지.”

아무것도 아닌 이유들을 지워버리니 음식 뿐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달라졌다.

음식 취향 이야기를 하다가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겐 무척 닮은 두 가지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마냥 어렵고 복잡하게만 생각해왔다. 신경 쓸 것 많아 피곤하다고. 상대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상처 입을까 무서워 시작조차 하지 않거나.

그런데, 어쩌면 사람간의 관계도 별 것 아닐 수 있다. 별 거 아닌 이유로 누군가에 대한 편견을 가지거나, 거리를 두거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와 맞으면 좋고 안 맞아도 그만이다. 좋은 부분이 있으면 그냥 그걸 좋아하면 된다. 싫은 부분은 넘기거나, 넘길 수 없다면 솔직한 대화를 통해 상대와 성향 차를 인정하거나. 나만의 잣대로 만든 색안경을 벗고 보이는 대로 보면 되는데.

사람도 일단 겪어봐야 안다. 아무것도 아닌 이유들로 타인을 평가하거나 스스로를 옭아맬 필요는 전혀 없다. 편견 없이 음식을 먹었을 때 좋아하는 맛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열린마음으로 사람을 대했을 때 내게 돌아온 건 상처 이상의 값진 경험이었다.

실은 별 것 아닌가보다. 낯선 음식에 대한 도전도, 새로운 사람과의 교류도. 해본 적 없는 일이라면 그냥 일단 해보는 거다.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정답 같은 깨달음이지만, 스스로 깨우쳐 실천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여전히 두려움이 더 많지만 그래도 일단 해보는 것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되도록 도전하기 어려운 것들로. 일단 오늘 저녁에는 새로운 생선탕류에 도전해봐야겠다.

 

글쓴이 : 송미란

윤문 : 안창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