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바다 저 멀리 잉글랜드 북런던은 큰 슬픔에 빠졌다. 아스날 소속의 어린 주장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자신의 고향팀인 바르셀로나로 떠나게 된 것이다. 그는 북런던 축구팬 절반 이상이 가장 사랑하던 선수였다. 충격적 이적이었지만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본래 파브레가스는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이다. 그는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은 유망주였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축구클럽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에는 유망을 넘어 이미 검증받은 재원들이 차고 넘쳤다. 파브레가스는 성인이 된 다음 자신의 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뛸 수 있는 팀과 뛰고 싶은 팀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을 거다. 마치,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 대한 고민이 넘치는 대학 4학년생들처럼. 결과적으로 2003년, 16살의 어린 나이에 아스날로 이적을 감행하니 몽상가보단 현실주의자에 가까운 그였다.

아스날 이적 뒤 파브레가스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질 수 없었던 수많은 기회를 부여 받게 된다. 그에겐 기회를 제대로 살릴만한 능력이 충분했고, 이적 후 8년간 총 57골 86 도움이란 공격포인트를 달성하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자리 잡는다. 연이은 활약에 바르셀로나는 파브레가스의 복귀를 추진한다. 말하자면, 졸업 후 그럭저럭 괜찮은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아 원하던 회사에 경력직으로 헤드헌팅 제의 받게 된 것과 비슷하달까? 다만 이직은 직원 본인의 의사만 확고하다면 어렵지 않게 이루어지지만 이적에는 현 소속 클럽의 결심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놀랍게도 아스날은 자신들이 데려와 월드클래스로 성장시킨 팀의 중심 선수를 바르셀로나로 보내는데 합의한다.  쿨해 보였을 정도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스날이 아닌 벵거의 허락이었다.

파브레가스의 성장을 직접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 시장 논리로만 움직이는 현 축구계에서 가장 느린 사람이자 마지막 로맨티시스트일 수도 있는 인물. 정확한 스펠링은 Arsene Wenger지만 프랑스와 독일 접경지역에서 태어난 덕에 독일식 발음으로 벵거라 불리는 프랑스 출신 감독.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소속 클럽 아스날을 20년 넘게 이끌고 있는 아르센 벵거.

 

평범한 구석이라곤 찾을 없는 괴짜 감독의 출현

경제학 석사 출신이란 축구감독으로서는 특이한 이력을 지닌 벵거는 전공을 십분 살린 클럽 운영으로 경제성과 합리를 추구한다. 아스날 부임 전까지 그는 중소 규모팀을 맡아 우승 반열에 올리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리그앙 소속팀 AS모나코를 리그와 컵대회 우승으로 이끌었고, 난데없이 일본 나고야 그램퍼스 감독으로 부임하더니 리그 2위, 일왕배 우승이라는 성과를 낸다. 모나코는 경쟁력 있는 팀이었지만 우승권을 쉽게 넘볼 수 있는 전력은 아니었고, 나고야의 일왕배 우승은 벵거를 포함 현재까지 역사상 총 두 번뿐이다. 그리고 역사적인 1996년, 당시 빅클럽과는 다소 거리가 있던 아스날과 유명하다기엔 다소 애매한 벵거의 만남이 성사된다. 이름 케미부터 심상찮은, 아르센(Arsene)이 아스날(Arsenal)의 새 감독으로 부임한 것이다.

그때엔 프리미어리그가 폐쇄적이던 시기였다. 축구 종가라는 콧대 높은 자존심에 외국 선수조차 많지 않았다. 비(非) 영국권 출신에다 유럽 입장에서는 축구 변방국인 일본팀 감독을 데리고 왔을 때, 언론뿐 아니라 리그 관계자들 모두 아스날과 벵거를 비웃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지. 벵거? 그는 풋내기야! 그의 의견을 말하려면 일본에서 하라고 해!

그땐 추호도 상상 못 했을거다. 그 풋내기에 의해 리그 우승을 빼앗기고 아스널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게 될지는. 재미있는 건 퍼거스 은퇴 당시 맨유 내부적으로 벵거를 후임자 1순위로 지목했었다는 사실이다. 축생사 새옹지마랄까.

벵거도 퍼거슨 못지않은 입담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말 중 가장 유명한 건 아마 이 말이 아닐까?

“나의 꿈은 타이틀을 모으는 것이 아니다. 단 5분이라도 아름다운 축구를 이어 나가는 것이다.”

요즘은 저 말이 돌아온 화살이 되어 제대로 경기를 지배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조롱거리로 인용되곤 하지만 아름다운 축구가 확실히 구현되던 당시 벵거의 아스날은 그야말로 우아한 강력함이 무언지 증명했다. 프랑스 아트사커 전성기와 궤를 같이 했던 벵거식 패싱 풋볼은 ‘벵거 볼’이란 수식어를 탄생시키며 피지컬 위주의 직선적 플레이에 길들여진 프리미어 리그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소위 ‘뻥 축구’라 불리던 롱패스와 치고 달리기에서 벗어나 공간을 점유하며 차근차근 패스를 통해 게임을 풀어갔고, 여기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팀들이 아르센의 아스날 앞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는 장관이 이어졌다. 그리하여 2003/2004 시즌 리그 무패 우승 신화를 쓰며 리그를 평정했다.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며, 날이 갈수록 좁아지는 팀 간 전력 격차에 비추어볼 때 기록의 갱신여지는 없어 보인다. 전 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팀 스쿼드를 꼽을 때 무패 우승 아스날은 반드시 열 손가락 안에는 드는 신화로 거론된다.

 

축구계의 워렌 버핏

벵거는 팀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영했다. 중형 클럽이었던 아스날을 빅클럽으로 만들기 위해 전략을 세우고 철저한 계산 하에 움직였다. 벵거는 경영자였고 투자자였다. 전술에 철학을 입혀 매력적인 경기를 펼치는 팀으로 만들었고, 믿고 보는 아스날 경기는 날로 인기가 높아졌다. 이에, 경기장을 증축하여 더 많은 관중석 확보로 구단 수입과 충성 팬층을 두텁게 쌓아나갔다. 클럽 부흥으로 재정이 탄탄해졌음에도 함부로 영입에 돈을 지출하지 않았다. 확고한 유망주 정책으로 직접 선수를 발굴해 육성했다. 아예 대놓고 ‘우린 슈퍼스타를 사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완성된 선수를 천문학적 가격에 영입해 몇 년 후 헐값에 내놓아야 하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고집이었다. 유망주 정책이 실효를 거두던 시절의 아스날은 분명 찬란했다. 앙리, 비에이라, 융베리, 피레스, 베르캄프, 캠벨, 레만 등 무패 우승 주역들이 모두 팀을 떠난 후에도 파브레가스, 로시츠키, 알렉스 송 등 유망주 정책에 의해 성장한 선수들이 팀의 중심으로 활약했다. 벵거는 아스날이란 브랜드 가치를 새롭게 정립했고 파급력 큰 브랜드로 성장시킨 것이다. 기업에 영입된 전문 경영자처럼. 구단주는 이런 벵거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야구계 혁명가라 불리는 미국 메이저리그 오클랜드의 GM 빌리 빈은 벵거의 경영자적 면모를 공개적으로 칭찬하기도 했다.

“벵거는 제가 생각할 때 워렌 버펫 같은 사람이에요. 그는 클럽을 100년 동안 운영할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보여요.”

레알 마드리드와 파리 생제르망 등 부자 구단들의 영입 제의를 물리치고 자신이 꿈꾸는 축구를 위해 끝까지 아스날에 남은 벵거. 그가 버티고 있는 한 아르센의 아스날은 영원히 위대할 것처럼 느껴졌다.

 

방향도 잃고 선수도 잃다

안타깝게도 작금의 아스날은 여태껏 쌓아온 긍정적 브랜드 이미지를 빠르게 잃어가는 중이다. 벵거는 늙었고 더 이상 창의적이지도 도전적이지도 않다. 그의 최근 유망주들은 끝내 포텐셜을 터트리지 못하고 노망주가 되어가고 있으며, 구단 철학을 깨면서까지 영입한 슈퍼스타들은 도리어 구단 분위기를 해치며 이적 기회만 엿보는 중이다. 근 몇 년 동안 만년 4위에만 머무른다 하여 붙은 별명 ‘사스날’마저 이젠 위태한 순위가 되어버렸다. 거너스의 강력한 포탄은 발사 추진력을 잃고 포신 내부로 굴러 떨어져 자폭하기 일보 직전이다.

2011년 파브레가스 이적 이후 수많은 스타들이 팀을 떠났다. ‘내 안의 작은 아이’ 란 역대급 발언과 함께 맨유로 향한 반 페르시를 비롯 나스리의 맨시티 이적, 알렉스 송의 바르셀로나 이적 등 조금만 포텐을 터트릴만하면 이적을 감행했다. 한때, 혁명적이었던 ‘벵거 볼’이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 아니게 되면서 아스날만의 경쟁력은 희미해져 갔다. 03-04 시즌 이후 우승 없는 아스날 축구는 아름다움의 매너리즘에 빠져 날카로움을 잃었다. 팀을 떠난 선수들은 하나같이 이적한 팀에서 쉽게 우승을 맛보았다. 아스날은 어느샌가 유망주를 키워 부자구단에 납품하는 우수 육성 클럽 같은 꼴이 되었다. 벵거가 꿈꾸던 완벽한 패싱 축구의 완성은 도리어 사비, 이니에스타, 메시로 대표되는 바르셀로나식 티키타카에서 실현되었다. 그 이후 아스날은 바르샤가 되고 싶은 아류 정도로 취급 받았다. 중심이 무너진 아스날식 아름다운 축구는 그들이 파훼했던 피지컬과 직선 축구에 다시 잠식당했다. 11-12 시즌 맨유에게 당한 8:2 대패는 더 이상 아스날에게 빅클럽이란 위상이 걸 맞는가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재고하도록 만들었다.

벵거 만한 감독이 없다는 옹호 파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이젠 많은 이들이 이견 좁혀 말한다. 더 이상 벵거는 최고의 감독이 아니라고. 아르센은 실패했으며 아스날에서 떠나야만 한다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판도를 바꾸었던 감독 아르센 벵거는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단지 너무 오래 한 팀의 감독을 맡았기 때문에? 그건 아무런 핑계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렉스 퍼거슨이 몸소 증명했다. 복합적인 사정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이 세 가지가 아닐까?

1) 다른 팀들이 벵거의 운영방식을 벤치마킹해 더 발전시킬 때, 차이를 더 벌리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문 점.

2) 변화된 전술 트렌드를 수용하거나 따르거나 새로운 전술을 발휘하지 못하고 검증받은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한 점.

3) 축구계 외부 자본의 유입으로 천문학적 이적료가 발생하며 축구 시장의 급변화가 찾아온 점

나는 바로 세 번째를 가장 결정적 이유로 꼽고 싶다. 자본논리가 심화된 축구 시장이 벵거를 위기의 남자로 만든 것이다.

 

만수르의 등장과 벵거의 몰락

자영업자에겐 조물주 위 건물주고, 축구클럽에겐 구단주다. 첼시에겐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있다. 벵거가 경영과 축구 전술로 팀을 바꾸었다면 로만은 오로지 돈으로 팀을 새롭게 리빌딩했다. 신흥 강호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팀이 바로 첼시다. 돈으로 역사와 위상을 살 수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해냈다. 첼시 쇼크는 FC 포르투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조제 무리뉴를 감독으로 데리고 오며 그 정점을 찍는다. 이로서 프리미어리그는 맨유, 아스날, 리버풀, 첼시의 4강 구도를 확립했고 그 어떤 리그보다 선두 경쟁이 치열한 리그로 유명해졌다. 소위 4대 리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받는 리그가 된 것이다.

로만까지만 해도 센세이셔널이었는데 훨씬 억 소리 나는 갑부 만수르가 등장해 또 한 번 축구계를 뒤 흔든다. 만수르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하냐면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이 갑부의 대명사로 그 이름을 알 정도다. 만수르의 맨체스터 시티는 손익 따위 아랑곳없이 돈을 푸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돈의 힘은 실로 위대했다. 기어이 13-14 시즌 팀 역사 최초 리그 우승을 일구며 리그 우승 경쟁 4강 구도를 5강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사실 만수르는 맨 처음 아스날을 인수하고 싶어 했는데 거절당했다는 일화가 있으니, 아스날과 자본의 악연이 참 묘하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기준으로 첼시가 589M 파운드(약, 8730억), 맨시티가 791M(약, 1조 1600억) 파운드를 이적료로 지출했다. 같은 기간 아스날은 단 203M(약, 2980억) 파운드의 금액만을 사용했다. 자본은 그대로 우승과 직결되었으니 돈을 많이 썼다고 마냥 비난할 수 만도 없는 일이다. 반대로, 연이은 구단 재정 흑자를 내지만 우승과는 아주 멀어진 아스날의 정책을 어디까지 옹호해야 할 지도 애매하다.

 

뒤쫓기에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다

차라리 구단 철학 따위 버리고, 돈을 써서 우승을 선물해달라는 팬들의 성화와 ‘사스날’에 대한 언론의 조롱이 이어지며 벵거도 차츰 고집을 꺾게 된다. 완성형 선수를 사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산체스와 외질이 팀에 합류했다. 무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였다. 한 번 무너진 원칙은 걷잡을 수 없이 되었고 매 영입 시장마다 팬들은 더 비싸고 잘하는 선수만을 바라는 추세다. 그렇다고 아스날이 1천억 원 이상의 비정상적 이적료를 아무렇게나 써버리는 팀은 아니기에 막상 사고 싶은 선수를 데리고 오기가 어렵다. 한 선수를 2천억 원 이상 주고 데려오는 팀까지 있는데 무슨 수로 영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는가? 아스날이 돈 없는 구단은 아니지만 맨시티나 파리 생제르망과는 분명 다르다.

분명 현재의 아스날로서는 우승을 꿈꾸기 어렵다. 누구 하나 문제라기보다 구단 전체적으로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스쿼드의 질부터, 영입 정책, 철학, 기어이 아스날의 아르센, 아스날을 지금의 아스날로 만들어 준 감독, 벵거까지도.

모두가 벵거를 경질해야 한다 말할 때에도 나는 그를 믿어왔다. 그만한 감독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며 벵거를 존경했던 꽉 막힌 거너스였다. 그런 나 조차도 이젠 아르센 벵거가 과연 아스날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감독인지 이젠 의심이 들기 시작한 건 사실이다. 아스날의 우승을 바란다, 간절하게. 그렇지만 벵거의 경질이 과연 답일까? 아스날을 망치는 건 정말 벵거일까? 요즘 자꾸 데니스 베르캄프의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아스날을 좋아한다. 하지만 당신은 정말로 아스날을 좋아하는가? 단지 트로피 때문에 아스날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벵거의 지도 아래 아스널의 무패 우승을 일군 주역 베르캄프.

벵거가 없었다면 그가 우리 팀에 있었을까? 앙리가 피레스가 우리 팀을 위해 헌신해 주었을까? 아름답다는 수식어를 우리 팀이 가질 수 있었을까? 아니, 벵거가 아니었다면 과연 나는 아스날을 우리 팀이라 부르는 거너스가 되었을까? 벵거 부임 전 아스날은 분명 중소 클럽에 지나지 않았다.

신념은 때론 현재를 외면한다

네덜란드 미술사 최고의 거장으로 불리는 17세기 화가 ‘프란스 할스’는 생전에 그 업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빈센트 반 고흐도, 최근 재평가 받는 광해 역시. 그들뿐 아니라 떠난 뒤에서 비로소 그 업적이 도드라지는 위인들이 적지 않다.

저마다 신념이 있다.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곧게 추구해 나가는 자신만의 정의이자 기준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신념을 품지는 않는다. 때문에 종종 시대를 앞서 나간 신념은 현재의 외면을 받기도 한다. 아르센 벵거의 신념은 그래도 한 번 세상을 뒤집는 데 성공했었다. 지금 상황이 어려워졌어도 벵거의 신념은 여전히 미래의 아스날을 향해 있는 것 같다. 충분히 지불 능력이 되는 구단임에도 당장 돈으로 성적을 구입하기보다 오래 견디고 언젠가 자생력을 통해 다시 우승할 수 있는 구단을 만드는 것. 벵거는 떠나도 벵거의 철학은 팀에 남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단연코 자본으로 살 수 없는 스포츠 정신이다. 아스날다운 아스날을 응원하는 진짜 팬을 위한 행보에 대해 가슴으로 생각해 볼 때다.

 

북런던은 다시 한 번 큰 슬픔에 빠지게 될 것

2017년 8월 28일. 이와 중에 아스날은 라이벌 리버풀에 4:0으로 대패했다. 쓰던 글을 다 지우고 싶었을 만큼 굴욕이자 치욕이다. 구단 내외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어두워져 갔고 벵거 아웃이 실제 가까워지고 있다는 체감이다. 20년간 아스날 감독을 맡으며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한 벵거. 어쩌면 올해야말로 그가 아스날을 이끄는 마지막 해가 될 수도 있겠다. 이번엔 정말로.

벵거가 떠난다면 수많은 팬들은 환호를 내 지를지 모르지만, 잘한 결정이라고 구단을 칭찬할지 모르지만, 선수들 내부에서 참았다는 듯 폭로성 발언들이 쏟아질지 모르지만, 당장 속이 시원할진 몰라도 아스널의 미래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장담한다. 아스날을 좋아했던, 좋아하는 모두는 반드시 벵거가 그리워지는 시점을 맞이할 거라고. 2011년 파브레가스가 떠났을 때에는 잠깐 울었지만 벵거의 아스날 시절을 그리워하며 슬퍼할 날이 찾아온다면, 그 이후 매일 아련함 속에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진정으로 아스날을 사랑했던, 아스날 자체인 한 남자를 그리워하며 말이다.

 

 

글쓴이 : 강산

윤문 : 안창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