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시장이 늘 계절을 앞서는 탓에 벌써부터 도톰한 옷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다. 가을, 겨울이 여름에 비해 옷 입는 재미가 있는 건 옷을 겹쳐 입는 레이어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히피 같이 치렁치렁한 레이어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셔츠에 타이, 자켓 정도는 입으니까. 단출하게 티셔츠 한 장으로 멋 내야 했던 여름에 비해서는 이것저것 고르고 색이나 패턴을 맞춰보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 가을보다, 거의 10kg 쪄버린 이 몸뚱이가 그런 재미를 느끼기엔 너무 버거워져버렸다. 특히 내가 즐겼던 레이어드는 셔츠에 카디건, 그리고 그 위에 자켓을 입는 방식이었는데, 이제 도저히 암홀이 껴서 그렇게 입으면 상체를 깁스한 것처럼 몸이 굳어버린다. 셔츠야 그렇다 치더라도, 가디건을 몸에 딱 붙게 입지는 않으니, 자켓이 오버 핏이 아닌 이상 내 몸에 맞는 사이즈라도 착용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 되고 마는 거였다. 특히 단정한 투 버튼 자켓 같은 걸 입으려면 카디건이나 니트류는 과감히 포기해야했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바로 베스트, 즉 조끼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베스트의 수요가 급증해왔고 (아마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리라. 비만 시대니까.) 니트 베스트뿐만 아니라 덕다운 패딩 베스트 등도 대중화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니트 베스트가 아예 어린 느낌이거나 아주 중장년층의 느낌이거나 하는 극단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주로 덕다운 패딩 베스트를 애용한다. 하지만 덕다운이라고 해서 절대 부피가 크고 올록볼록한 것으로 골라선 안 된다. 말 그대로 레이어드와 약간의 보온성을 위한 아이템이니까.

셔츠에 타이, 그리고 덕다운 패딩 베스트를 입고 그 위에 자켓을 걸치면 몸통은 든든하면서도 팔 움직임이 걸리는 것이 없다. 요즘은 얇고도 보온성이 좋은 베스트가 많아서 자켓 전체의 쉐입을 망치지도 않는다. 캐주얼하게 입을 땐, 복숭아 뼈가 보이는 길이의 데님 팬츠나 치노 팬츠에 낙낙한 레귤러 핏의 화이트 셔츠나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네이비, 카키, 블랙 색상의 패딩 베스트를 입어보자. 지극히 단순한 코디가 베스트 하나로 센스 넘치는 룩이 된다.

환절기에는 그 자체로 아우터의 기능을 하지만 한 겨울에도 베스트를 빛을 발한다. 거추장스러울 것 없이 몸통만 집중 공략해서 추위를 막아주는 데다가, 아무리 껴입어도 불편하지 않으니까. 혹시 베스트로 코디하는 것을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특히 나처럼 한 덩치 하시는 분이라면) 베스트가, 베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