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털에 관한 유전자의 쏠림 현상이 심한 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머리 쪽으로 내 신체 털의 90% 정도가 몰린 것만 같다. 부모님의 풍성한 머리숱과 반곱슬 모발을 물려받은 나는 일정 길이 이상 머리가 길면 머리 부피가 커지는 마법을 부릴 수 있다. 미용실에 갈 때마다 미용사들이 감탄하는 머리숱이라고 하면 감이 오시려나.

그런데 그런 머리숱과는 반대로 몸의 체모는 전반적으로 없는 편이다. 다리털도 종아리와 발목 부근에 조금 있는 편이고 팔에도 얇은 털들이 은은하게 누워있을 뿐이다. 심지어 겨드랑이 털은 좌우의 밀집도가 확연히 다르고, 며칠을 폐인같이 지내도 ‘덥수룩’한 수염은 불가능한 수준이다. 개인적인 기호들이 있겠지만 나는 이런 나의 ‘털 쏠림’ 현상이 그런대로 다행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극단적으로 생각해, 그 반대라고 생각해보라. 머리숱은 너무 적은데 온 몸의 털은 너무 풍성한 상황.

우리가 흔히 성격을 두고 ‘털털하다’라고 하면 ‘사람의 성격이나 하는 짓 따위가 까다롭지 아니하고 소탈하다.’ 정도로 해석된다. 어감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대부분 나쁘지 않은 상황을 평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외모가 ‘털털하다’라고 할 때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경우 ‘털이 너무 많다. 과하다.’ 는 의미로 쓰이곤 한다. 아니, 털 많은 게 뭐 어때서. 겨드랑이 털의 자유를 논할 수 있는 요즘 같은 때에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털털하지 말아야 하는 곳’ 은 있는 것 같다. 어떤 편견이나 기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 예의의 문제랄까. 눈썹과 눈썹 사이 미간과 콧속, 그리고 가끔 알 수 없는 이유로 한 가닥 길게 자라난 털 같은 것들. 굳이 이런 털까지 동원해 ‘털털해 보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눈썹과 눈썹 사이 미간에는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을 뿐 보통 몇 가닥의 털들이 나곤 한다. 흡사 프리다 칼로를 연상시키는 눈썹도 있는데, 그녀처럼 그 자체로 하나의 시그니처가 되기를 의도했다면 가타부타할 것 없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적어도 미간정도는 깔끔하게 정리하자. 나는 주로 눈썹 정리용 칼을 이용한다. 면적이 좁고, 정리해야할 털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보통 폼 클렌징으로 낸 거품이 남아있을 때 잽싸게 하는 편이다. 초보일 때는 자칫 잘못하면 눈썹 앞꼬리가 댕강 사라져버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코털은 절대 삐져나와선 안 되는 털 중 하나다. 근본적으로는 집게로 털을 뽑는 것이 오래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매번 뽑아도 눈물 나는 괴로움은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아주 희박한 확률이지만 코털을 함부로 뽑다가 감염이 될 수도 있다고 하니, 나는 코털 제거용 전동 제품을 애용한다. 4,5일에 한 번씩만 해주면 내 코털을 한 번 보려고 온갖 표정을 지어도 안전하다.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아주 얇고 긴 털 한 가닥. 이게 참 어렵다. 우선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심지어 털이 난 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당연히 상대방도 쉽게 눈치 챌 수 있는 털은 아니다. 그런데 이 별것 아닌 털 한 가닥이 중요한 순간에 눈에 띄었을 때의 ‘무드 파괴 효과’는 엄청나다. 몸은 그렇다 치더라도 목 위, 얼굴까지는 꼭 점검해야 한다. 특히 경조사가 있거나, 데이트가 있을 땐 더더욱. 내게도 나는 그 긴 털을 내가 직접 발견하고 뽑은 적은 없다. 오랫동안 연애를 이어온 여자 친구가 늘 먼저 발견하고, 뽑아주곤 한다.

사회생활에서 ‘때론 대범하기도 하고, 또 때론 세심 제 주위를 살펴 배려하는 역량’은 필수다. 세수를 할 때마다 내 미간 사이, 콧수염 같은 것들을 살피는 것은 나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내가 만날 사람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미간, 코털, 이유 없는 긴 털. 이렇게 세 가지 털만 확실히 정리한다면 적어도 털 때문에 해야 될 걱정은 모두 털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