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와 수영장을 다닌 적이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프리랜서 강사셨는데 주로 아침, 점심 때는 시간이 여유로워 나에게 생존수영을 익힌다는 이름 하에 수영장을 데리고 다니셨다. 한 일년정도는 꾸준히 다닌 것 같은데, 다행히도 덕분에 바다든 호수든 물이 있는 어디든 물에 대한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졌다.

평영을 배우던 즈음이었다. 자유영과 배영을 배우며 자신감을 익혔던 나는 수영장 가며 준비해야할 것들을 기계적으로 챙길 수 있을만큼 수영장에 익숙해졌다. 사실 어린 나이라 별로 챙길 것도 없었다. 수영모, 물안경, 수영복 그게 다였다. 나머지 타월이나 샴푸, 수건 등은 모두 아버지 몫이었는데 나는 그런 것들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느 날,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한 후 탈의실에 왔을 때였다. 아버지가 갑자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차가운 물에서 헤엄치다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후 온도 조절이 잘 되지 않아 덜덜 떨고 있는 내게, 아버지는 계속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가방을 뒤적거렸다.

수건을 빨리 달라는 무언의 눈빛에 아버지는 더더욱 손으로 뒤적였지만 끝끝내 수건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수건을 챙겨오지 않았던 것이다. 철없던 어린 나이라 뭔가 억울했다. 주변에 다른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과 내 꼴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대뜸, 탈의실 사물함에서 자신의 런닝셔츠 속옷을 꺼내오더니 나를 벅벅 닦기 시작했다. 면재질의 속옷이라 닦기에는 수월했지만 그 두께가 수건보다 얇으니 당연히 작은 꼬마 한명 닦았는데도 물기를 가득 머금었다.

부끄러웠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했고, 억울했고, 뭔가 세상에서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아까 언뜻 보았던 다른 부자들이 사이좋게 물기를 닦는 모습과 비교하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나를 다 닦이시고는 세면대에다 런닝을 짠 뒤 자신의 몸을 닦았다. 잘 닦이지 않자, 선풍기에 몸을 말렸다. 나는 삐진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부끄럽고 당시 어린 나이의 나에게는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말 없이 돌아왔다. 아버지 표정에는 뭔지 모를 미안함이 묻어있었지만 그 또한 아무 말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 왔을 때는 점심 때였고, 아버지께서는 점심을 먹기 위해 무언갈 또 부산스럽게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엄마가 안쳐놓은 밥도 없었고, 라면도 없었다. 집에 먹을 거라곤 짜파게티 몇 봉지 뿐…

아버지는 짜파게티를 끓이셨다. 나는 운동 후 굶주린 배를 안고 얼른 짜파게티 먹기를 기다렸다.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이건 볼 필요도 없이 냄새만으로도 끝내주는 짜파게티라 생각했다. 그리고 식탁 앞에 앉았을 때, 냄새와 실제 비쥬얼, 그리고 맛은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짜파게티에 국물이 그득했다.

아버지는 짜파게티를 끓이는 방법을 모르셨던 모양이다. 보통 라면처럼 물에 그냥 스프를 풀어 끓이셨다. 내가 머뭇머뭇하자 아버지는 먼저 한 젓가락을 드시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씀하셨다.

“맛이 와 이라노.”

당연히 그럴수 밖에. 내가 뒤이어 먹어봤을 땐, 내가 상상했던 딱 그 맛이었다. 그야말로 無맛. 아무 맛도 없었다.

“김치랑 같이 무그면 되겠다.”

나는 또 다시 부끄러웠다. 아버지는 당황스러워 하며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하려 했지만, 그 때 나는 이미 수영장에서 앞선 설움과 함께 신세에 대한 한(?)이 터져버렸다. 울지는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젓가락을 놓았다. 그리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시간을 보냈을까, 저녁 때가 되어서야 아버지가 보낸 화해(?) 메시지에 끝끝내 웃음을 보였다.

철없는 어린아이라 그럴 수 있다고 여길 수야 있지만, 나는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다. 오히려 그때의 기억을 지우고 싶을 정도로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당시의 부끄러움과 지금의 부끄러움의 차이는 아버지의 국물있는 짜파게티를 이제는 더 이상 맛볼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국물 있는 짜파게티를 끓이지 않으신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본래의 레시피대로 끓인다. 하지만, 이제 지금에 와서야 아버지에게 그 때의 짜파게티를 한 번 더 끓여달라 하기엔 내가 그 장면을 돌이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 하지도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