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만 3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외삼촌이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내가 아장아장 걷던 시절, 워낙 조카바보이신대다가 다정다감하신 분이라 한국에 오실 때마다 가장 큰 조카인 나와 먹방을 찍으러 다닌다. 미국에서는 잘 먹기 힘든, 혹은 먹을 수는 있으나 그 맛을 잘 내기 힘든 세상의 모든 한식을 좀비마냥 찾아다닌다.

삼촌과 함께 온갖 맛집을 들쑤시고 다닐 때마다 삼촌이 항상 습관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다. 아마 내년에 삼촌과 함께 먹방을 찍을 일이 있을 때 또 듣게 된다면, 아마 백번쯤은 될 거다.

“외국음식은 단맛, 짠맛 밖에 없어”

나의 외가는 다들 미식의 대가다. 외가집 입맛을 완성시킨 외할머니는 요리의 대가셨고 그를 물려받은 외가집 가족 대부분은 외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런 ‘미식의 가족’에서 서열 2-3위쯤 되는 외삼촌이 외국음식을 논할 땐 딱 저 한줄평 밖에 없다.

글의 맥락을 이해하면 외국음식은 그만큼 단순하다는 말이다. 단맛과 짠맛을 베이스로 하여 사람의 자극적이고 일차원적인 맛에 집중한다는 뜻일게다. 여기서 말하는 외국음식이란 미국에서 현지화된 세계의 모든 음식을 말할테지만 아마 삼촌의 입에는 미국에서 먹었던 일식, 중식, 이태리식 등의 모든 음식이 그렇게 느껴졌으리라 생각된다.

삼촌은 항상 ‘쓴맛’을 그리워하셨다. 냉이 된장국이라던지, 씀바귀 나물 같은 쓴맛의 식재료를 찾아다니셨다. 그러면서 한줄평에 더 빗대어 말씀하시길, 한식만큼 쓴맛을 잘 이용하는 나라도 찾기 힘들다고 하셨다.

곰곰이 곱씹어보니 그말이 맞는 듯했다. 이태리의 많은 샐러드들과 특히나 일부러 쓴맛을 뒤엎어버리는 ‘루꼴라 피자’는 특이한 경우다. 허브는 쓴맛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개념이라기보다 향을 덧대기 위한 보조적 재료로 쓰인다. 쓴맛 자체가 올라오는 걸 반기는 경우는 적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쓴맛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깻잎은 향도 향이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나는 그 알싸한 매운듯한 쓴맛을 사람들은 즐긴다. 상추의 쓴맛도 적극적으로 삽겹살과 함께 애용되며 씀바귀, 방풍나물 등의 수많은 쓰디쓴 나물들이 상위에 메인으로 올라온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탄수화물 덩어리로 식재료로 무언가를 싸맬때, 우리의 한식은 쓰디쓴 채소들로 속을 싸맨다. 이런 쓴맛을 베이스로 한 음식들중 최고봉은 아마 쑥국이 아닐까 싶다.

최근 발표된 쓴맛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미식의 세계에서 우리가 쓴맛을 이용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쓴맛은 식욕촉진 호르몬인 ‘그렐린(Ghrelin)’의 분비를 촉진한다. 그런데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쓴맛을 먹게되면 위장의 내용물을 더 느리게 밀어낸다는 것이다. 단순히 소화를 덜 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위장의 음식을을 다른 장기로 내려보내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즉 쓴맛은 단기적으로는 식욕을 높여 다른 맛에 시너지를 주는 효과가 있고 그와 동시에 위가 비는 것을 늦추어 식욕억제 역할을 동시에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왜 이런 쓴맛을 즐겼을까에 대한 연구는 더 필요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조상들은 이미 이런 쓴맛의 효능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씀바귀의 쓴맛을 두고 ‘심신을 안정시키고 노곤해질 몸에 맑은 정신을 불어넣어준다’ 고 기록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쓴맛을 피하도록 진화되어왔지만 우리는 쓴맛을 먹는다. 하지만 단순히 약효나 효능을 두고 먹는 것은 아니라 분명히 그 안에 어떤 미식적 작용을 한다. 쓴맛은 그 어떤 맛이 되었건 시너지를 준다. 쓴맛을 먹고 난 뒤의 단맛은 그 단맛을 더 극대화 시키고, 쓴맛 뒤의 짠맛은 짠맛을 더욱 부각시킨다. 쓴맛 뒤의 신맛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미식의 최고봉은 쓴맛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둔다. 피하기 위해 생성된 진화의 틀을 깨고, 더욱 도전적인 쓴맛을 이용한 요리를 맛보는 것, 그것이 인간이 가진 최고의 특권아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