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밀면’, ‘전주 비빔밥’, ‘영덕 대게’
그리고 ‘춘천 철판 닭갈비’

기발하고 창의적인 간판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요즘에도, 어딜 가나 찾아볼 수 있는 상투적인 간판들이 남아있다. ‘부산 밀면’, ‘전주 비빔밥’, ‘영덕 대게’, 그리고 ‘춘천 철판 닭갈비’- 지역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버린 그런 간판들. ‘원조의 느낌’을 더해 보려는 뻔한 상술 탓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술이 소비자에게 먹힌다는 것은 해당 지역이 얼마나 그 음식으로 정평이 났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나의 본가인 김해에도 (참고로 김해는 ‘뒷고기’가 유명하다. 김해 뒷고기.. 혹시 당신의 동네에도 있지 않은가?) ‘춘천 철판 닭갈비’ 가게가 있다. 다만 그 집은 그냥 상술로 내건 이름은 아니었고 실제로 춘천 출신의 사장님이 춘천에서 공수해온(?) 노하우로 닭갈비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진정성이 엿보이는 곳이었다. 그 사장님이 춘천 출신이라는 건, 김해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인데 그게 가능했던 건 그 가게 입구 유리 전면에 큼지막하게 사장님의 주민등록증 사본을 붙여놨기 때문. 아무튼 그 정도면 뭐,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원조’ 라 할 만 했다. 무엇보다 닭갈비가 굉장히 맛있었는데, 거기엔 굉장히 공감각적인 맛이, 섞여 있었다. 상투적이지만, ‘춘천의 맛’이랄까.

맛, 그렇다. 사실 음식점에서 원조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과적으로는 맛이다. 위생, 청결, 역사 모두 중요한 요소지만 돈을 내고 먹는 소비자 입장에선 아무래도 맛있는 음식에 손이 더 가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내가 단지 ‘맛이 있기 때문에’ 김해의 ‘춘천 철판 닭갈비’ 집을 진짜 원조라고 인정했던 것은 아니다.

그 시절, 춘천의 첫맛

스물 셋, 지금으로부터 어언 6년 전 11월, 공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하고 혈기왕성하던 나는 앞뒤 재지 않고 무전여행을 떠났다. 거의 대부분은 걷고, 가끔 불쌍한 행색으로 히치하이킹에 성공하기도 하면서 김해에서 부산, 울산, 경주, 포항을 경유했다. 말도 안 되는 노래 실력으로 버스킹을 하고, 과수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면서 약 3주 뒤 나는 춘천에 도착했다. 호수에 물안개가 가득하던, 춥고 외롭던 그 날의 기억. 다행히 내 주머니엔 그동안 번 돈, 아끼고 아껴둔 피 같은 돈이 있었다. 춘천에 도착하자마자 굶주린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오직 하나. 바로 ‘철판 닭갈비’ 였다.

춘천의 명동으로 가면 닭갈비 골목이 있는데, 정말로 철판 닭갈비 가게만 수십 개가 있다. 메뉴는 거의 비슷비슷했다. 철판 닭갈비와 막국수, 그리고 볶음밥. 특이했던 건 아직 혼밥, 혼술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때인데도, 닭갈비를 1인분씩 판매하고 있었다. 저마다 원조, 최고, 방송 방영 등을 내걸며 광고하고 있었다. 나는 발이 이끄는 대로 한 가게에 들어가서 철판 닭갈비 1인분과, 볶음밥 1인분, 막국수까지 그 자리에 해치웠다. 멈출 수 없는 맛이었고, 후회 없는 맛이었다. 무전여행의 맛이었고, 무모하고 객기어린 청춘의 맛이었으며, 내 기억 속 춘천의 첫맛이었다.

나는 이틀 동안 춘천에 머물렀다. 김유정 문학촌을 기웃거렸고, 닭갈비를 먹었다. 소양댐으로 가서 막국수를 먹었다. 배를 타고 소양강을 건너 청평사라는 절에 도착해서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다시 저녁으로 닭갈비를 먹었다. 춘천 출신 대학 동기에게 물어 골목골목을 쏘다녔고, 다음날도 닭갈비를… 먹었다. 불과 이틀 만에, 감격스럽던 ‘춘천의 첫맛’은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나 싶을 정도의 맛으로 변해버렸다.

공감각적 음식 먹기

약 한달 만에 무전여행을 끝내고 본가로 돌아온 나는, 한동안 허무함에 시달렸다.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고, 새로운 인간이 되어 있을 줄 알았던 것과 달리 여행이 끝나자 모든 것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버렸다. (물론 그땐 몰랐겠지, 그 경험이 지금의 글이 될 줄은) 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면, 닭고기에 환장하던 내가 한동안 철판 닭갈비만은 먹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다섯 끼니 정도를 닭갈비만 먹었던 후유증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무전여행의 기억과 후유증도 사라졌을 쯤, 김해의 ‘춘천 철판 닭갈비’ 가게에 가게 되었던 것이다. 가게 입구에 사장님의 춘천 태생 주민등록증이 붙어있는 바로 그 닭갈비 가게. 동그랗고 커다란 철판에 가스 불을 켜고 잠시 기다리면 손질된 닭고기와 양배추, 대파, 양파, 깻잎, 떡, 양념이 푸짐한 언덕을 이룬 철판만큼 큰 쟁반이 나온다. (경상도에선 그런 쟁반을 ‘오봉’이라고 부른다. 일본식 표현이지만 왠지 정감이 가는 오봉.) 쟁반에 있던 재료를 통째로 철판에 쏟아 붓고, 사장님이 능숙한 솜씨로 섞고, 볶는다. 볶다보면, 닭갈비의 매콤, 달달한 향이 올라온다.

별 생각 없이 앉아 있던 내게, 그 향은 문득 춘천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춘천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싸늘한 공기, 물안개 속 희미한 시야, 혼자서 닭갈비와 볶음밥, 막국수를 해치웠던 그 가게의 부산스러운 소리와 그 날의 식욕, 소양댐과 청평사, 그리고 점점 물려만 갔던, 해도 해도 너무한 춘천 닭갈비의 맛까지. 아직 입도 대기 전, 김해에 있는 어느 ‘춘천 철판 닭갈비’집의 냄새는 내 후각을 자극해서 그 날의 기억을 불러왔다. 기억 속에 있던 오감을 모두 끌고 왔다.

조리가 끝난 후 닭갈비를 먹었을 때, 나는 ‘아, 이 가게는 진짜 춘천 철판 닭갈비 맞구나! 여기 사장님 진짜 춘천 사람 맞구나.’ 생각했다. 내가 춘천에서 먹었던 바로 그 맛. 감탄스러웠고, 물리기도 했던 바로 그 맛이 그대로 났다. 그건 내가 춘천을 겪고 난 후에야 알게 된 ‘춘천의 맛’이었다. 미각이 아니라 온 몸으로, 온 감각으로 기억하는 바로 그 맛.

음식으로 공감하기
‘We Are The 춘천’

음식의 맛은 주로 미각과 후각에 의존한다. 하지만, 가게 간판에 ‘춘천, 부산, 김해, 전주’를 내걸면 그 지역이 갖고 있는 시각, 촉각, 청각 등 다양한 기억 속 감각들이 동시에 작용하게 된다. 공감각적으로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공감각적으로 음식을 맛보고 나면, 그 지역 사람들과 공감대가 생긴다. 타지에서 만난 어떤 사람이 “부산하면 밀면 아닌가요? 정말 맛있던데요?” 한 마디 해주면 괜히 반가운 것처럼, “닭갈비하면 춘천이지, 춘천에서 닭갈비 먹어 봤어요?” 하는 순간, 내 본가는 김해지만 다같이 ‘We Are The 춘천’ 되는 거다.

그래서 어떤 음식들에는 양념이나 재료의 맛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맛까지 섞여있다. 춘천에 대해, 춘천 철판 닭갈비에 대해 이런 경험을 해버린 나로서는 아무래도 간판에 ‘춘천’이라고 적힌 닭갈비 가게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닭갈비는 역시 춘천이지, 괜한 거드름을 피우면서. 혹시, 내가 잊고 있던 스물 셋, 그 시절 춘천의 맛을 또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일말의 기대를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