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서로 치고박고 싸우지 않은 평화의 날보다 다툼의 먹구름이 낀 날이 훨씬 더 많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분쟁이 발생하고 수많은 민간인들과 어린 아이들이 포화의 연기 속에 질식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는 폭력적 수단을 통한 자원획득의 용이성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평화의 길을 모색하기 보다 전쟁에서 생존확률을 더 높이기 위한 길을 선택했다. 그 결과, 인류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데스의 강에 빠트리는 동안 그 강물 위에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댐을 쌓아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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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쟁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인류가 전쟁을 했던 목적도 ‘더 많은 식량과 자원의 획득’ 이라는 이기심에서 비롯됐다. 인류의 조상들은 전쟁을 통해서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음식과 요리 분야에서도 새로운 생존수단을 발전시켰다. 또한 전쟁으로 인한 물자이동과 새로 유입된 식재료의 등장으로 다양한 식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은 교역보다 더 많은 양의 물자와 인구를 한꺼번에 이동시킨다. 점령군의 고향음식은 현지화되고, 점령지의 식재료는 퓨전화된다. 이런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참치다.

참치는 원래 동서양 모두에서 외면받던 식재료였다. 동서양의 음식문명이 거들떠 본적도 없었다. 당시의 보관기술과 참치의 활동반경을 생각해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참치는 선홍빛의 생선답게 살코기에 혈액이 많아 부패가 빨리 된다. 참치를 잡아 항구에 도착해봐야 신선하게 먹을 수 없었다. 이 정도의 하급생선취급을 받던 참치가 식량으로써의 두각을 나타낸 것이 바로 1차 세계대전 무렵이었다.

일찍이 나폴레옹은 정복전쟁을 하면서 전투식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죽하면 그는 ‘군인은 위장으로 전진한다’ 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식품을 장기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모했고, 당시 공모전의 상금은 1만 2000프랑으로 상당한 거액이었다. 이 때 통조림의 원조 아이디어격인 병조림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보관방법의 혁신을 불러 일으킨 병조림이 훗날 통조림으로 발전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 나폴레옹의 전쟁물자로 개발된 통조림 속에 참치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시 참치 어획량의 대다수는 미국 해군기지가 있는 캘리포니아 남부지역에 몰려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자 마자 유럽 각국에서 참치 통조림을 수입해가기 시작했다. 맛과 영양이 닭고기에 비견될만큼 좋았기 때문에  전투식량으로 쓰기 딱 알맞은 모양새를 취했다. 1917년 당시에는 22개였던 참치 통조림 공장이 36개로 증가할 정도로 인기는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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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초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싼 가격에 영양가 높은 전투식량으로 손색 없었기에 영국군, 독일군, 호주군 너나 할 것 없이 참치 통조림을 전투식량으로 썼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참치는 먹을만한 식재료이자 전투식량으로서의 위치를 가지고 있었을 뿐, 딱히 요리라는 음식의 타이틀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식량으로서의 참치는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그 지위가 달라진다. 당시 미국에서 생산되어 유럽에 퍼져 나간 참치는 어쨌거나 전체적으로는 서양문화권, 유럽문화권 내에서의 참치소비일 뿐이었다. 그것을 소비하고 먹는 방식은 나폴레옹을 원조로 한 통조림이라는 형태의 유럽문화권 내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동아시아 끝에 위치한 섬나라였다. 중국과 한국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문화권 내에 있으면서도 유럽식문화와는 다른 섬나라 특유의 독특한 식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은 서양사람들에 박혀있던 ‘참치=통조림’ 이라는 개념을 다르게 적용시킨다.

일본은 진주만 점령 후 참치라는 생선을 본격적으로 맛보게 된다. 그리고 미국처럼 처음에는 전투식량, 전쟁식량으로서의 활용가치를 매우 높게 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은 그들 특유의 날것문화를 참치에 적용했다. 참치를 회로 활용했고, 스시형태로 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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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후, 하와이에서 물러난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얻어간 것이 있다면 바로 ‘참치’였다. 비록 전쟁에서는 패배했지만 그들은 참치라는 거대한 식문화를 가져갔다. 그리고 해산물에 대한 탁월한 미식을 가진 나라답게 그들은 참치의 부위를 다양하게 해부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미국에 진출하며 맛 본 기름진 스테이크의 입맛을 참치 스테이크로 대신했다. 그리고 패전 직후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에서는 참치수요가 꾸준히 증가한다. 그리고 그들의 식문화가 전세계에 주목받을 즈음에는 참치산업의 원조격인 미국은 온데간데 없고 그들의 참치요리만 인류의 머리속에 남아버렸다.

참치는 전쟁통의 배고픈 군인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유일한 식량이었다. 군인들은 이 생선을 먹으며 고향에서 엄마와 부인이 해주던 닭고기 요리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되지 않는, 진한 그리움으로 이 퍽퍽한 살코기를 꾸역꾸역 삼켰을 것이다. 그러던 참치가 두 차례의 큰 전쟁으로, 전 세계에서 각광받는 고급식재료로 인생역전한다. 지금은 오히려 그 남획으로 인한 개체수가 부족해지고 참치어장을 둔 세계 각국의 또다른 참치전쟁이 벌어질 지경이다.

인간의 모순된 점은 식재료 획득이 나은 전쟁이 또 다른 식문화를 만들고 그 획득된 식문화로 인해 또다른 전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이런 모순의 역사 속에서 오늘도 포화 속에서 꽃피운 음식들을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