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써클의 시대에서

어쩌면 다크서클의 시대에 살고 있는 같다. 시내에 나가려 버스의 기사님 눈에도, 시내에서 밥을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 종업원 눈에도, 밥 먹은 입가심 음료 사러 들어 편의점 점주 눈에도, 길고 깊은 다크서클이 드리웠다. 하나같이 바랜 낯빛에 무기력한 표정이다. 인원이 없어 운행 시간이 늘어나 그렇고, 매장 크기와 손님 수에 비해 종업원 수가 부족해 그렇고, 아르바이트 숫자를 줄이고자 점주가 감당하는 근무 시간이 턱없이 늘어 그렇다. 좀 쉬면 괜찮아질까?

헌데, 일 하지 않는 사람들 눈에도 다크서클이 있다. 각종 자격증 영어 시험, 스펙 쌓기를 위해 존재하는 학원가에 보면 수강생들 눈이 퀭하다. 일 하는 사람이 되고자 밤새워 공부하느라 그런가보다. 그나마 남는 시간은 봉사니 체험이니 인턴이니 각종 활동에 쏟느라 바쁘단다. 그렇게 이력서 줄씩 채워나가다 보면 다크서클이 나이테처럼 겹겹 쌓인다. 아등바등 취직에 성공하면 괜찮아질까?

이상하다. 일이 없어 방황하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과도한 업무에 눌려 죽는 사람들도 많다. 그나마 일자리도 계약직인 경우 부지기수다. 일자리가 귀하다 보니 노동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기도 어렵다. 업무량은 많고 급여는 적어도 그마저 자리가 없어 서로 원한다. 언제 잘릴지 몰라 사방 눈치 다. 몸이 힘들면 맘이라도 편해야 하는데, 몸과 마음 죄다 옥죈다. 그게 ‘불황’이란 놈의 먹은 심보다. 뭐 하나라도 가만히 두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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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가 놓은 수도꼭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사람들은 쥐어짜듯 겨우 돈을 꺼내 쓴다. 현명한 소비 때문이 아니라 정말 돈이 없어서. 핫딜, 폭탄딜, 심지어 멘붕딜까지 해야 물건이 팔린다. 얼마나 좋은 물건을 샀느냐 보다 얼마나 싸게 샀느냐가 자랑거리다. 가성비는 중요한 화두다. 아메리카노 잔에 시대가 도래했고, 그렇게 동종업계 깎아먹기 끝에 뼈까지 갉아먹기 일보 직전이다.

악만 남는 순환이라 악순환일까? 불황은 사회 곳곳 불안을 키운다. 재정 불안과 고용 불안 같은 사회 구조적 불안도 그렇고, 안절부절 못하는 심리적 불안까지. 한 숨으로 기지개 일어나 숨으로 호흡하며 하루를 보내고 숨과 함께 기절하듯 잠이 든다. 피로에 찌든 잠은 꿈을 꾸지 않고 새로 내일에도 이룰 꿈이 없다. 꿀 있는 대부업체가 건네는 돈뿐. 연이율 46%의.

아껴야 산다가 써야 산다로, 그렇게 박리다매마저 박리 소매로.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소극적이 된다. 예컨대 인원 감축 같은. 그나마 빠르고 쉬운 방법이다 보니.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말처럼 쉽지 않다. 경영 공부를 하다 보면 몇몇 훌륭한 위기 극복 사례를 배우게 되지만 흔치 않은 경우니까 책에 나오는 거다. 한 맞으면 움츠려 드는 일반적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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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해지에 따라 남은 사람들에게는 과중한 업무가 주어진다. 1센티이던 다크서클이 10센티가 된다. 분야마다 바쁜 시즌이 오면 단기계약직으로 인원 부족의 간극을 메운다. 한 사는 매미처럼 시즌이 끝나면 정리될 인원이다. 그마저도 자리가 없다. 일자리를 비집는 경쟁에 치여 밑이 검어지고 채용되면 일이 많아 입이 파래 지고, 다시 해고되면 걱정과 상처에 속이 타들어간다. 다크서클이 온몸으로 퍼져간다.

돈이 영향 미치지 않는 삶은 실상 없을 거다. 돈과 자신감은 비례관계다. 돈 없으면 초라해지고 종일 심란하다. 꼭 필요한 아니면 지출이 꺼려진다. 먹고 사는 위기 앞에 문화와 여가는 천덕꾸러기가 된다. 솔직히, 꼭 필요한 때조차 망설여질 때가 있다. 소비가 위축되니 기업은 돈을 벌지 못하고, 개인은 주변 물건들을 하나 정리하고 기업은 사람을 정리하고… 오랜 불황은 주변의 소중한 것들이 줄어드는 과정이다. 빛을 떠나 빚을 떠안는 압박이다.

돈이 돌지 않는 사회는 동맥 경화 걸린 사람 같다. 순환이 된다. 하나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다 쓰러진다.

정부는 경제를 살리지 못했다. 한두 기업 힘낸다고 해결될 불황도 아니다. 고용 해지가 야기하는 소비 감소, 소비 감소가 불러오는 기업 수익 악화, 다시 고용 해지. 개인의 노오력으로 메울만한 구덩이는 더더욱 아니다. 좌절할 새도 없이 날아드는 공과금 통지서 속에서 우리는 그래도 시절을 견뎌내야 한다. 의욕이나 의지 문제가 아니라, 그렇다고 죽을 없으니까. 살긴 살아있으니.

오뚝이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지만 여긴 낭떠러지 사이에 걸린 외줄 위다. 그 한가운데서 겨우 서있다. 그러므로, 고용과 해지의 균형은 생존의 균형이다. 생활 이전 생존이 우선 사회를 우리는 어떻게 버텨내야 할까? 아니, 우리라는 인칭도 사치겠다. 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있을까? 떨어지면 죽는데,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걸음 내딛기가 겁난다. 눈 부릅뜨고 잔뜩 긴장을 유지하느라 눈이 퀭하다. 다크서클이 길고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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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에 대한 기대 없이, 오늘을 욕심 내지 않고

고용과 해지는 권한이 아니다. 다만, 나는 고용되기 위해, 그 다음 해지되지 않으려 애쓸 따름이다. 내겐 답이 없다. 고용과 해지 사이 균형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뻔한 말만 늘어놓겠지. 성실히, 꾸준히, 열정으로, 노력으로, 도전하고, 차별화하고, 좌절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책임감을 가지고, 잠도 줄이고, 휴식도 줄이고, 어쨌든 일단 열심히 열심히, 정말 힘들게 미친 열심히.

하아

말이야 쉽지. 뻔지르르 하지. 식상한 조언들은 불황을 헤쳐나가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균형의 무게 추는 의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그렇다고 사회운동이라도 벗고 나서 깜냥도 안되고.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는 찔끔찔끔인 세상 속에서언젠가라는 희망고문을 악물고 참는 수밖에. 또, 투표 잘하고.

상황은 쉽게 변하지 않을 싶다. 불황의 근본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 적극적이고 바람직한 개입. 다만, 현 정권에 그런 것들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기업이 살아야 국민이 산다고 외치는 나라에서 개인의 희생은 지극히 당연한 되어 버렸다. 내 처지 챙길 있는 오로지 나뿐. 언젠가 좋은 시절이 오리란 기대는 달콤하지만 일단 그때까지 버텨야 아닌가. 얼마나 오래 처절하고 지루한 생존을 계속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떻게든.

그저 살아남는데 티끌만 팁이 하나 있다면 순간을 사는 것. 어차피 내일이 불확실한 행보라면 지금을 희생할 필요 있을까 싶다. 오늘에 모든 거는 거다. 기대를 버리면 그럴 있다. 다음 기회는 없고, 좋아질 언젠가는 없다고. 더 나빠질 있으랴는 정도만 염두에 두고.

기대가 낮아지면 실망도 줄어든다. 실망이 줄면 좌절이 짧다.

내게 있어 이런 태도는 염세주의가 아니다. 되려 지극한 현실 지향이다. 순간에 충실한 삶과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다르다. 지금 하는 무언가가 이후 어떤 영향을 미치리란 계산 없이 그저 하는 행위에서 의미를 찾는 거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면 어느새 성장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또, 빠른 태세 전환이 가능해진다. 취업에 성공하면 해서 승진할 것을 욕심내지 말고 당장 주어진 일과 새로운 사람들에 적응하자. 자신에 대한 기대를 거두어내면 실수 후에도 자책할 필요가 없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님으로. 노련해진다는 많이 봤다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하게 되어 있다. 남들보다 앞서 나가지는 못하더라도 남들만큼은 따라잡게 된다. 중요한 지금 일만 바라보는 것. 그게 집중력이 되고 끈기가 된다. 혹 해고당한다면 술을 진탕 먹든 홀연히 여행을 떠나든 이불 꽁꽁 덮고 하루 종일 자든, 당장의 감정을 해소할 아무 거라도 하자. 그러고 나서 바로 다음 직장 찾는 거다. 전에 몸담았던 곳에서 있던 일을 생각하지 말자. 그건 이미 지난 순간이다. 지금 순간 무얼 하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부족한 아니라 거기랑 나랑 맞았던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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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하고 나아지려 너무 애쓰지 말자는 이야기다.

그건 일단 살아남고 뒤에 따질 부분이다. 안정된 직장에서 정착에 성공하면 그때 발전해도 된다. 돈도 없고 여유도 없을 때에는 그저 닥치는 대로 순간순간 있는 하는 낫다. 생각이 가벼워질수록 멘탈이 살아난다. 불황과의 장기전은 결국 멘탈 싸움이다.

단, 순간에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 순간, 나는 맥주를 마실까 하다가 글을 쓴다. 글쓰기를 마치고 시원하게 들이켤 맥주에 대한 기대는 접었다. 덕분에 조급함이 사라졌다. 지금 쓰는 글에만 집중하고, 이 내용만 생각한다. 잘 써야겠다는 욕심도 버렸다. 썩 맘에 들게 쓰인 글이 아니다. 이 주제를 논하기에 현재 식견은 부족하다. 대안을 제시할만한 깊이가 지금 내겐 없다. 아쉽지만 자책하진 않는다. 일단, 지금 이걸 쓰는 중요하다. 고용과 해지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해 보았다는 것. 그 생각을 얼기설기나마 풀어내려 애썼다는 것. 나는 그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둔다. 더 읽고 쓰다 보면 나아지겠지. 기대를 거두고 순간에 충실히.

이 글을 다 쓰면 무얼 할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