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의 괜찮음

사람들 사이에는 선이란 게 있다. 지켜야 할 것, 넘지 말아야 할 것. 누군가에게는 허용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제각기 다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연애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으며, 패션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취향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 선을 넘는 순간 우리는 쉽게도, 불쾌해진다.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어떤 사람은 대뜸 나에게 물었다. 그 말이 곧 “너도 말 편하게 해도 돼.”와 동의어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세상에는 그런 선들이 있다. 누군가가 편해지면 또 다른 누군가가 불편해지는 선.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넘는 선이다. 나의 편함이 당신의 편함이 같지는 않을진대, 어떤 이들은 그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한다.

반대로 “말 편하게 하시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나름의 배려일 수도 있다. 자신을 낮추고, 나를 높이려는 예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 질문이 하나 빠져 있다. 내가 ‘말을 놓는 것’이 과연 나에게 편함일까 라는 물음.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반말을 하지 못해 곤란해 하던 모 연예인의 얼굴이 잠깐 스쳐 지나간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20161025-11

 

그러니까, 나는 아직 당신과 조금 불편하고 싶다.

우리 사이에는 아직 그 정도의 선이 있다. 나는 차라리 그 불편함이 편하다. 연애도, 패션도, 취향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편함이 남의 편함과 같은 것일 리 없고, 당신의 불편함이 타인의 불편함과 같은 것일 리 없다. 그것만이 편함이라면- 나는 차라리 불편하고 싶다. 조금은 불편해도 괜찮다.

 

필자. 프리터 이찬우

큐레이팅. 칸투칸 HRMP 김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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