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한 음식 이야기 – 멸치편

멸치는 청어목 멸치과의 바닷물고기다. 중국의 취두부를 제치고 세계 최악의 악취 음식으로 손꼽히는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의 식자재인 청어와는 형제지간. 원래 청어목의 생선들은 산패가 빠르고 비린내가 심해 염장형태로 주로 활용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조상들도 멸치를 다룰 때 우리나라처럼 젓갈형태를 활용했다. 고대로마 사람들도 그리스에서 유래된 ‘가룸(Garum)’이라는 멸치액젓형태의 소스를 사용했고, 그 안에 최음성분이 있다고 믿었다. 후에 이것은 이탈리안 요리에서 자주 쓰이는 엔초비 통조림 형태로 굳어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멸치에 대한 몇몇 기록이 눈에 띈다. 최초의 어보 ‘우해이어보’는 멸치를 ‘멸아(蔑兒)’라 기록했고,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에서는 멸치를 ‘멸어(蔑魚)’ 라 쓰고 있다. ‘멸(蔑)자’는 ‘업신여길, 멸’ 이자, 멸망(滅亡)에 쓰이는 ‘멸(滅)자의 부수로 쓰인 글자로 급한 성질 때문에 잡히자 마자 바로 죽어버리는 멸치에 대한 선조들의 시각이 드러나는 단어다.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원래 멸치는 고려가 멸망할 무렵, 처음 잡힌 고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멸려치(滅麗治, 고려를 멸한다는 뜻)라 불리었다는 썰도 있다.

멸치를 손질하던 방식도 동서양의 구분이 없었다. 내장을 떼고(어머님들이 말씀하시길, 흔히 멸치 똥뗀다는) 멸치의 대가리를 떼는 과정도 서양에서 중요하게 여겨진다. 오죽하면, 얼굴 빼고 다 괜찮은 사람을 보고 이탈리아에서는 멸치라고 부른다고 한다. 머리만 빼고, 쓸만한 사람. 물론 외모비하발언이긴 하다.

이런 독특한 손질법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 멸치라는 재료가 조금 더 특별할 수도 있다. 요리를 업으로 하고 있는 동생에게 멸치에 관한 에피소드에 대해 물었더니, ‘엄마랑 TV 보면서 멸치 똥 뗀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했다. 특별하지 않은 기억같아 보이지만, 멸치만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는 건 굉장히 소중한 기억이다. 이런 경험이 내 동생만의 기억은 아닐 것이다.

인류의 역사, 그리고 개인의 추억과 함께 해온 식재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제외한 전세계 어디에도 ‘멸치의, 멸치에 의한, 멸치를 위한 요리’ 를 발견하기 힘들다. 물론 엔초비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시저샐러드와 멸치로 육수를 낸 일본과 한국의 국수요리들이 있지만, 오로지 멸치만을 전면에 내세운 요리라 부르긴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멸치를 앞세운 요리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멸치볶음’. 물론 반찬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이드 디시격 요리지만 엄연히 많은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는 요리임에 분명하다.

학교급식을 먹는 요즘 세대들과는 달리,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던 세대라면 멸치볶음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떠올려보면 당시에는 비릿했던 냄새가 지금은 어쩌면 향긋한 향수처럼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도시락 뚜껑을 열면 항상 다른 반찬칸의 경계를 넘나들곤 했던, 혹은 도시락 뚜껑에 붙은 몇 마리를 떼먹던 학창시절의 그런 향수 말이다.

출처 – FreeQraion

내 여자친구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추억이 있는 듯 했다. 여자친구는 어린시절 고모와 함께 살았는데, 고모님께서 스님이셨다. 당시 성장기 여자친구에게는 칼슘의 끝판왕인 멸치볶음은 더 없이 중요한 영양학적 식재료였지만, 채식을 하셔야 했던 고모님께서는 멸치볶음을 해주실 때마다 맛을 보지 못해 항상 여자친구에게 맛을 보게 했다고 한다.

정작 본인이 드실 것도 아니고, 맛도 보지 못하셨지만 어린 조카의 건강을 위해 온갖 좋은 재료는 다 갖다 쓰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멸치 자체의 짠맛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시고 좋은 고추장과 좋은 간장을 아낌없이 쓰시다 보니 고모님의 멸치볶음은 항상 짰다고 한다. 이에 지극히 순둥이었던 여자친구는(괜한 팔불출 발언이 아니다) 맛이 어떠냐는 물음에 항상 ‘맛있다, 간이 딱 맞다’ 라고 했다. 그리고 아마 고모님은 자신의 멸치볶음이 염장수준으로 그렇게나 짰을 지 아직도 모르고 계실거라 했다.

입댈 것 없이 완벽하게 만들어진 음식보다 만든 이의 실수가 곁들여진 음식이 때론 우리의 기억 속에 더 진한 그리움으로 남을 때가 있다. 그것이 사랑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멸치는 이런 실수투성이의 생선이다. 반찬 한 귀퉁이를 차지할만큼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을 때도 있고, 때론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육수에 흔적도 보이지 않을만큼 녹아버리는, 말 그대로 업신여길 만한 식재료다.

하지만 업신여김을 당하는 이 작은 생선이 들어간 음식은 아주 작은 사소한 실수 하나만으로도 음식의 맛이 달라진다. 대가리와 내장을 제대로 떼지 않으면 쓴 맛이 나기 일쑤고, 육수를 낼 때 조금만 오래 끓여도 비린 맛이 육수에 베인다. 멸치볶음을 할 때도 양념과 함께 너무 오래 볶으면 과당이 응고되어, 냉장고에 하루밤만 자고 나와도, 젓가락이 들어가지 않을만큼 돌처럼 굳어진다. 또 이미 짠 생선이라 간 맞추기도 까다롭다.

그래서 멸치는, 이를 사용하고 만든 이의 후회와 푸념을 유독 자주 들을 수 있는 식재료다. 하지만 똥을 덜 떼냈다는 후회에도, 너무 오래 끓여버렸다는 후회에도, 간이 세다는 후회에도 먹어줄 이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업신여길만한 생선으로 만든 요리지만 그 요리만큼은 업신여기기 힘들다. 먹어줄 이에 대한 사랑의 일념으로 이 온갖 실수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하고, 때론 사소한 실수 하나로 맛을 놓친 요리에도 그 실수가 곧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여읜 한 지인은 멸치볶음을 볼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난다고 한다. 멸치를 씹을 때마다 엄마가 떠올라 많이 보고 싶어진다 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순히 멸치에 대한 추억에서 깃든 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젠가 다음 소개할 시를 스쳐 읽고서 그가 했던 말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똥 빼고 머리 떼고 먹을 것 하나 없는 잔멸치

누르면 아무데서나 물 나오는

친수성

너무 오랫동안 슬픔을 자초한 죄

뼈째 다 먹을 수 있는 사랑이 어디 흔하랴.

– 멸치의 사랑, 김경미

아마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멸치요리가 있다면 그 요리를 만들어준 사람의 마음은 아마 이와 같을 것이다. 어쩌면 우린 멸치를 씹었던 것이 아니라 그 요리를 내어준 사람의 온 정성을 다 삼켰을 지도 모르겠다. 흔하디 흔해서 소중함을 모르지만 뼈째 사무친 그 큰 정성 모두를, 멸치라는 이름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