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행사에서의 만족도를 다음 5점 척도에 맞추어 기입하십시오.

한참을 망설인다. 나에게 오직 다섯 가지의 목소리만 주어진 상황. 다섯 개 중 하나의 목소리를 표해야 한다. 만족은 되긴 했으나 어떤 부분은 좀 아쉽고, 아쉽다고 하기에는 그래도 행사가 문제없이 진행되었으나 또 그렇다고 ‘잘 되었다’는 표현을 하기에는 좀. 딱 떠오르지 않는 것에 대한 선택은 언제나 중간지점이다. 그렇다고 바로 아래에 이어지는 주관식은 채울 여력이 없다. 이미 짧은 시간 많은 고뇌 후에 이어진 갑작스러운, 구체를 요하는 질문은 이미 중간을 선택해버린 나에게 곤욕과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산수나 수학에 젬병이었다. 몰론, 지금도 그렇다. 내가 수학만 잘했어도… 인생이 바뀌었을 거라고 사뭇 진지하게 말할 정도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농담 같은 말이지만 웃으면서는 못하겠는. 정말 내가 수학을 잘했더라면 지금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은 직장인이 되어 숫자를 다루지 않으면 안 되기에 어느 정도 노력하긴 하지만 그 시절 수학에서 받은 트라우마는 매출이나 마케팅 척도를 위한 숫자만 봐도 다시 한 번 두 눈을 부릅뜨고 남들보다는 약 몇 초간의 이해 시간이 더 필요하게 만들었다. 그냥 내가 못났다고 해둬야겠다. 아니면 천상 문과라고 자위할 수밖에.

당신은 오늘 4,832걸음을 걸으셨고 목표대비 168걸음 부족합니다.

아깝다. 정말 아깝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 나는 하루 온종일을 앉아서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 운동 부족에 시달린다. 그러니 걸음 수에 언제부턴가 민감해졌다. 한 걸음이라도 더 걸으려 노력하던 모습은 언제부턴가 휴대폰이 알려주는 걸음 수로 스스로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가만, 점심 먹고 사무실 주변을 20분간 돌았던 나는 휴대폰을 놓고 갔더랬다. 그럼 오늘의 목표인 5천 걸음은 족히 넘고도 남았을 터. 그럼에도 휴대폰에 찍힌 4,832 걸음이 어느새 나의 몸과 생리적 흐름을 ‘규정’하고 말았다. ‘플라시보’ 효과와는 반대인 ‘노시보’효과의 활약이 시작된다. 5천 걸음이 아닌, 딱 4,832 걸음만큼의 칼로리가 빠져나간듯한 느낌. 게다가 목표 달성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1과 0으로 점철된 현 세상은 이미 워쇼스키 자매가 ‘매트릭스’에서 예견해왔다. 영화적 기법과 스토리 전개를 위해 좀 더 극적으로 만들었을 뿐. 숫자로 규정되는 모습과 그 숫자에 좌우되는 현 사회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디지털 사회’를 폄하하거나 그 이로움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를 위한 주제로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글 쓰는 일이 점점 커질까 봐.


그저 나는 숫자 유감을 떠올리다, 위와 같은 생각들을 해봤다. 어쩌면 너나 나나 우리 모두가 ‘실증주의’를 추구하고 요구받고 있어서인지 모른다. 심리학을 전공하다 보면 배우는 통계 프로그램은 프로이트나 융은 상상도 못했겠지만, 이제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의 빈도와 확률을 가지고 행동했을 때, 저 사람은 어떠어떠하다…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입증’되는 시대가 돼버렸다. 마음까지 우리는 그렇게 기꺼이 숫자로 표현하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숫자가 인격이야.

특히, 학교에서 또는 직장에서 우리의 인격은 숫자로 판가름 난다. 아니, 어디 그들 뿐일까. 학생들은 점수로, 직장인들은 매출 숫자나 KPI (Key Performance Index)로. 프로듀서는 시청률로, 정치인은 득표수로, 운동선수들은 승점과 등수로. 숫자가 개입하지 않는 곳이 없다. 아니, 개입만 하면 다행이다. 유감인 것은 우리 자신은 없어지고 숫자로 평가되고 남겨진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만들어 놓고 우리가 그 안에 갇힌 꼴. 애매모호한 것을 명쾌하게 구분하고 전달해주는 이로움의 그것은, 어느샌가 ‘척도’가 되어 우리의 인생에 들어와 많은 것들을 규정하고 옭아매고 있다.

그렇다고 숫자 없는 세상을 표방하자는 것은 아니다. 숫자가 없으면 아마 상당히 혼란스러운 사회가 될… 잠깐. 근데 정말 그럴까? 숫자가 없으면 어땠을까? 문명의 이기나 디지털과 같은 문명의 이기는 애초에 없었을까? 그럼 우리 인류는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왔을까? 숫자가 아닌 다른 ‘개념’으로 그 숫자를 대체했을까? 아니면 그저 그런 것 없이 우리가 아는 숫자의 매력이나 효용, 부작용은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을까?


결론 내지도 못할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애초에 내 잘못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본다. 숫자로 ‘규정’되는 것들이 자칫 나를 표현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지. 아니면, 그 숫자라는 것에 목매고 더 중요한 것들을 잃거나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스스로도 ‘실증주의’에 익숙해져 사람들에게 구체적 숫자를 받아내야 맘이 편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 내지는, 숫자와 조화를 이뤄가며 살아갈 방법론까지.

그래서 숫자가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하는 것은 내 주제에 감히 하지 못 할 일이지만, 어째 오늘은 마음속에서 한 마디가 솟아올라온다.

그냥… 뭐 좀 유감이라고.

소심하기 짝이 없지만, 그 소심함을 숫자로 표현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가만 굳이 5점 척도로 표현하자면 숫자에 대한 나의 유감은 몇 점일까? 

그 소심함은 어느 정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