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를 먹는다.

아무 맛도 안나는 밋밋한 생선회의 맛과 향기를 느끼게 된 건 아마도 대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한 선배의 설명에 머리로는 이해해도 도대체 느껴지지 않는 맛을 반복하다 결국 빠져 들었다.

이제는 내가 회 맛을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왜 이 맛을 못 느끼냐고 말하곤 한다.

골프를 친다.

도대체 왜 골프를 치는지 모르겠었다. 어렵게 자란 탓에 어쩌면 골프 치는 사람들을 증오했었는지 모른다. 돈과 시간이 남아돌아 허세를 부리고 저런 돈 있으면 더 좋은 곳에 쓰라는 야유를 해대곤 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비거리에 기뻐하고 슬퍼한다.  살아생전에 이렇게 목표 의식이 뚜렷한 적이 있던가 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필드를 나가 이른 아침의 스산한 물안개와 넓게 펼쳐진 잔디의 향연에 함께한 그때부터 사람들이 왜 골프를 미치도록 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끼깡끈꼴꿈.

신입사원 때 거래처 나이 지긋한 부장님께서 해주신 말이다. 사람은 ‘끼’, ‘깡’, ‘끈(기)’, ‘꼴’, ‘꿈’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요즘이야 좋은 말이 SNS에 넘쳐나 흔한 말이 되었지만, 10년이 훌쩍 지난  그때에는 내게 정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바로 수첩에 적어 놓고는 하루하루 그 다섯 글자를 되뇌었다.

이제는 내가 후배들에게 이러한 말들을 해주고 있다. 그 다섯 글자 외에, 내가 느낀 것과 배운 것 들을 함께.

집요하게 일한다.

일을 배우며 성장해가며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그중 내가 만난 정말 집요한 한 상사는 내게 고통과 가르침을 함께 주었다. 물론, 고통이 먼저였고 돌아보니 가르침이었다. 그 집요함에 주위 모든 사람들이  피곤해했고 그 상사의 선배들마저 손사래를 쳤다. 그 아래에서 일을 배우다 보니 난 그 집요함이 무서웠다.

몇 년이 흐른 지금. 내가 어려운 일에 직면했을 때, 난 그 상사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대한 그와 비슷하게 행동한다. 집요하게 일하다 보면 풀리는 일들이 더 많다.

부모가 되어간다.

언젠간 부모가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부모가 되어보니 연신 미안한 마음이 든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라 아이에게 미안하다. 연습해볼 겨를도 없었고, 뭘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난 그저 내가 잘나서 잘 자란 줄 알았다. 그 뒤에 있었던 부모님의 무한 사랑과 도움이 있었단 걸 깨닫게 된 건 철이 들어 한참 지난 나 또한 부모가 되었을 때다.


생선회 맛을 역설하던 선배.

골프에 미쳐 비거리가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된 사람.

자신의 철학을 후배에게 전해주는 인생 선배.

집요하게 일하는 상사.

그리고 부모라는 존재.

어쩌면, 그 입장이 되지 않으면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낼 존재들 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 입장이 되고 그 상황이 되었을 때 문득 떠오르는 소름 돋치는 생각.

그야말로 식스센스급의 반전이 아닐까.

그게 나였다니.

지금 이렇게 살아갈 나를, 내가  그때 미리 만나봤었다는 걸 나이를 먹어가며 깨닫게 된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고 내가 관심 없다 하여 무관심하게 지나 보내는 것들에 대한 시선을 다시 점검해야 할까 보다. 지금 내 주위에, 내가 미래에 만날 내 모습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인생에는 답이 없지만, 어디나에 힌트는 있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크로우 박사 (브루스 윌리스)는 자폐증에 걸린 소년을 치료하게 된다.

콜 시어 (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말한다. 자신이 유령을 볼 수 있고, 그 유령들은 자신들이 죽었는지 조차도 모르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자신이 죽었는지 조차 모르고, 보고 싶은 것만 봤던 건 바로 크로우 박사였다는 것을 깨달으며 영화는 다시금 깨지지 않을 역대급 반전을 선사한다.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곧 나 자신이었는지 모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느라 미래의 나와 삶의 힌트를 놓치는 우리네 모습이 그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머지않은 미래에, 스쳐 지나간 그들이 바로 나였음을 느끼기라도 하면  다행일지도.

그래서 우리는 삶 속에 녹아 있는 식스센스급의 반전을 눈에 불을 키고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