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을 천천히 걸으며 자기만의 생각에 골몰해있는 남자가 있다. 그런데 이 남자 수상하다.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채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바지 밑으로 알 수 없는 가루를 조금씩 버리고 있다. 이쯤 되면, 이 남자의 이름을 기억 저편에서 꺼낼 수 있을 것이다. 교도소 안의 운동장을 걷고있는 이 남자는 앤디 듀프레인이다. <쇼생크탈출>의 그 듀프레인이다.

듀프레인은 지질학을 좋아했다. 빙하기와 수백만 년에 걸쳐서 형성되는 산맥에 관한 학문. 이 지질학이 듀프레인에게 바깥 세상으로 이어주는 지도가 됐다. 자신의 수감실에서 ‘벽이 부스러진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되고 지질학 지식을 활용해서 세상으로 나가는 탈출로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에 관한 학문이다. 땅은 시대마다 다른 압력을 견뎌내면서 뒤틀렸다. 지층은 각기 다른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채로 쌓였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시간을 통해서 땅을 보고 시대를 구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산맥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지질학은 지구가 ‘시간’과 ‘압력’을 어떻게 견뎌왔는지를 깨닫게 하는 학문인 셈이다.

듀프레인은 탈출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압력을 견뎌냈다. 수감자들의 눈을 피해 벽을 파내려갔던 긴 시간과 수감생활에서 마주치는 소장과 교도관들의 압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필요했다.  “필요한 것은 그것 뿐이다. 압력과 시간  그리고 입구를 감싸줄 포스터.” 그의 교도소 친구 레드의 말에 힌트가 있다.

듀프레인이 시간과 압력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그 모든 걸 임시적으로 가려줄 수 있는 포스터 한 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감실에 뚫려있는 커다란 구멍을 가릴 수 있게 덮어둔 얇은 포스터 한 장. 듀프레인이 시간과 압력을 견뎌,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꿈을 꾸고 있을 때, 모두를 눈속임할 수 있는 포스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말콤 글래드웰는 <아웃라이어> 에서  ‘10,000 시간의 법칙’을 소개한다. 어느 분야든지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선 여러 근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으니, 딱히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이 인용이 사용되는 맥락은 좀 불순할 때가 많다. 이 법칙은 흔히 ‘사원을 집에 보내지 않고, 프로젝트 마감을 핑계로 회사에 무리하게 남게 할 때’사원들의 퇴근 사유를 너절한 변명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같은 말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최장 시간이라는데, 아마 우리나라 직장인만큼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한 사람들이 있을까.

‘아버지’로 살기보다는‘사회인’으로 산다. 애석하게도, 딸과의 추억 보다 상사와 쌓인 에피소드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의 시간은 흐른다.

압력은 어떤가. 듀프레인이 소장에게 압력을 받고 있는 동안에 아버지들은 상사의 압력, 프로젝트의 압력, 클라이언트의 압력, 실적의 압력을 받는다. 조금이라도 압력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를 압력으로 밀어넣기도 한다. 압력을 줄이기 위해서 한 걸음 더 압력 속으로 들어간다. 일을 줄이기 위해서 일이 더해진다. 일이 일을 만든다. 회사엔 공기청정기가 잘도 돌아가건만, 숨통은 턱밑까지 올라온다. 공기에도 압력이 존재한다는 걸 언제부터 알게 되었던가.

시간과 압력,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해서 듀프레인의 비밀의 방을 가려준 ‘포스터’가 직장에서도 필요하다. 자존심 상하지만, 내 모습은 아니지만, 적당히 연출된 표정과 페르소나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술상무’가 되기도 하고, 부하 직원들에게는 ‘꼰대’와 ‘멘토’그 사이를 어정쩡하게 오간다. 그렇게 조금씩, 아버지의 가면은 듀프레인의 포스터를 닮아간다.

아버지 방정식은 이렇게 세워진다. 회사에 엉덩이 붙이는 시간, 업무와 사람들에게 받는 압력, 그리고 ‘사원’에서 ‘아버지’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 모든 걸 잠시나마 덮어줄 수 있는 만들어진 직장인이라는 가면.

딸 애를 만나기까지 우리는 매일 쇼생크탈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500야드의 오물 터널을 통과하며 탈출하고 쏟아진 단비를 두 팔 뻗어 맞이한 듀프레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