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와 글

글자 못 읽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글 못 읽는 사람은 많다. 나열된 단어 조각들을 발음할 줄 알아도 단어들이 꾸린 문장을 이해하는 이는 드물다. 대한민국 문맹률 낮다는 이야기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딱히 내세울 자랑도 아니다. 읽되 이해하지 못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2008년 기준, 국제연합개발기획(UNDP)에 따르면 한국의 문맹률은 1% 이하라고 한다. 소위 ‘까막눈’은 이제 거의 없다. 하지만, 독해력이나 문해력을 의미하는 ‘실질 문맹률’은 정 반대 양상을 보인다. 2011년 OECD에서 실행한 ‘국제 성인 문해력 조사’ 결과는 참담하다. 한국의 실질 문맹률은 무려 75%에 달하는데 이는 가입국 중 최하위에 해당한다. 글자를 외워 읽고 쓰는 것을 넘어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은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고도의 문서 해독 능력’ 수치는 한술 더 뜬다. 전문 및 첨단 정보와 신기술 등을 직업에 자유자재로 적용할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이 능력을 갖춘 한국인은 인구의 2.4%에 불과하다. 상사의 지시에만 따르지 않고 능동적으로 복잡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인재가 부족하단 의미다.

그나마 위안삼던 단순 문맹 1%조차 허점 많은 조사 결과란 게 간접적으로 증명되기도 했다. 2014년 국가평생교육진흥원 국가문해교육센터에서는 18세 이상 인구를 대상으로 ‘국내 성인 문해 능력’을 조사했다. 수준 1로 분류되는 읽기, 쓰기, 셈하기가 불가능한 인구 264만 명, 수준 2의 생활 활용 미흡 판정 인구 248만 명이라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읽고 쓰는 것 자체만도 버거워 생활에 불편 겪는 사람조차 예상외로 상당수다.

 

한글의 위대함은 지당하지만, 뛰어난 문자를 가진 것이 훌륭한 문장 이해력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글은 사람의 생각 표현 수단 중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말이 더 잦기는 해도 녹음으로 남긴 기록보다 글로 쓴 문서량이 훨씬 방대하다. 학습 역시 글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업무의 많은 부분이 문서를 주고받으며 이루어진다. 따라서 독해력과 문해력이 부족하면 타인과 원활한 소통에 문제를 겪게 된다.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논의는 핵심을 빗나가기 일쑤다. 수준 높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발전을 저해하고 사회 참여율을 낮추는 원인이 된다. 빠른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이 바른 성장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자꾸 주춤대는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경험치가 쌓일수록 레벨 다운하는 이상한 시스템

실질 문맹 75%라는 수치는 전체 통계다. KBS에서는 2014년 기획 뉴스를 통해 연령대별로 실질 문맹 테스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OECD의 문장 독해능력 테스트 문항을 입수하여 진행했다. 한 구청 복지관의 인터넷 교실을 방문해 컴퓨터 사용에 어느 정도 능숙한 장년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본 결과, 17명 중 9명이 약 설명서에 있는 주의사항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문제로 20대 10명에게 물었을 때에는 짧은 시간 안에 모두가 정답을 맞추었다.

 

표본 수가 많지 않은 간이 테스트 범위였지만 OECD가 발표한 ‘문자 독해력 조사’ 결과를 증명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OECD는 회원국 노동인력의 질을 평가하기 위해 해당 조사를 진행했는데, 국내에서는 6천 명을 표본 대상으로 삼고 직접 면접 조사를 실시했다. OECD 평균은 273점이고 연령대별로 이 테스트 결과를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젊은 층과 중장년층의 독해력 점수 격차에서 1등을 기록했다. 16~24살까지 젊은 층은 292점으로 일본과 함께 3위 수준으로 나타난 반면, 표본 중 가장 고령층인 55~65세 집단은 244점으로 최하위를 기록한 것이다. 각 연령층 사이에서 또다시 독해력 수준을 나눌 수 있는데 55~65세 사이 실질 문맹으로 여기는 ‘매우 낮음’이 31.27%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준의 OECD 평균은 24.54%다) 그냥 ‘낮음’도 46.13%라 전체 77.4%가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독해능력을 나타내고 있다.

나이가 들며 독해력이 떨어지는 건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지만 한국의 경우 격차가 독보적이다. 무려 48점이라니. 영국은 0.1점 차이가 나고, 빈부 격차 심한 미국의 경우에도 8점 차이가 고작이다.

한국 사람들의 독해력은 20대 초반에 정점을 찍는다. 타국의 경우 30~35세에 정점을 찍었다가 나이가 듦에 따라 완만하게 감소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감소율은 연령 증가에 따라 극하강 곡선을 보인다. 한국 중장년층 독해력은 또 개인차가 굉장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기관 담당자 말에 따르면 어릴 적 집에 책이 많았던 중장년층의 독해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 시절 집에 책이 많았다는 건 어느 정도 부유했다는 의미가 된다. 독서량과 독해력은 당연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중장년층의 경우 집안 경제력 수준 차이가 결국 독해력 수준 차이로 이어졌을 확률이 높다.

 

2000년대 교육 수준이 크게 향상되고 책이 흔해진 만큼 젊은 층은 독해력 향상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개인 PC가 보편화된 이후 꼭 책이 아니더라도 웹을 통해 자주 다양한 텍스트에 노출되었다는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사회 문화적 혜택도 나이 들며 급격히 퇴화되는 독해력 저하를 막아낼 재간은 없었나 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역량을 꽃피우는 30~35세 구간에서 이미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꽃은 저물기 시작한다. 20대까지는 다들 영민하고 똑 부러지던 아이들이 왜 역량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지 못하는 걸까?

강압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와 비합리적 노동환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OECD 문자 독해력 조사 연구 담당자는 ‘책을 읽지 않은 채로 나이가 들면 독해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책 읽으며 나이 들 수 있는 여유를 갖춘 사회인가? 독해력을 높이는 방법은 실로 간단하다. 많이 읽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시간이 필요하고 사회에 본격 진출한 이후 무엇보다 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

OCED의 다른 조사 중 우리나라가 1위를 기록한 항목이 있다. 바로, 노동시간.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일상적이고 퇴근 후에도 마저 못한 업무를 신경 써야 하는 환경에서 맘 편히 책 한 권 읽을 시간 따윈 없다. 책은 틈틈이 읽는 거라고 꼰대 소리 하지는 말자. 그 틈과 틈 사이에 조차 사내 정치에 휘말려 처신에 공을 들이거나, 도태되지 않기 위한 자기계발에 열 올려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 업무 관련 스킬이 담긴 전문 서적이나 외국어 교재 들여다보기에도 빠듯한 틈틈이다.

 

하필 20대에 독해력 정점을 찍는다는 사실도 긍정적으로 보긴 어렵다. 아이들은 엄청난 텍스트에 노출되는데 수능을 위한 주입식 교육 과정일 따름이다. 본문을 읽고 핵심을 추려 빠르게 답을 맞히는 훈련 때문이다. 많이 읽고 생각하기까지는 되는데, 생각한 것을 나누고, 정리된 생각을 자기만의 것으로 풀어내는 데는 미숙하다. 젊은 층이 주가 되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기사 댓글들을 보면 이런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각자 자기 말만 하고 있을 뿐, 타인 의견을 듣고 주장을 주고받으며 건전한 토론을 나누는 모습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대학교 특강을 나가 뻔한 질문을 하나 던져도 자신 있게 손드는 학생이 별로 없다. 읽어서 요지를 파악하는 건 잘하더라도 습득 지식 활용은 부족하다. 리포트나 논문을 쓰는 데 있어 필요한 건 검색 능력과 편집 기술이 된 지 오래다.

EBS에서는 조기 영어 교육이 잘 된 아이들을 대상으로 단어 이해력 테스트를 시행했던 적이 있다. 아이들은 국어로 쓴 단어를 보고 그에 맞는 영단어를 바로바로 말했다. 그 정도야 별 것 아니란 듯이. 하지만, 단어의 뜻을 묻자 상당히 많은 단어 앞에 묵묵부답이 되었다. 나무가 TREE인 줄은 알아도 나무가 무언지 설명하진 못하는 거다.

숙달된 암기력은 순간적 독해력 향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응용이 안 되는 상태에서 사회에 나가 취직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직무 능력은 업무 매뉴얼을 외워 푸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종일 회사에 묶여있지만 배우는 건 사내 권력 관계도 뿐이고, 느는 건 처세술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겨우 자기 자리를 다지고 나면 창의적인 후배의 입사가 달갑게 보이지 않는다. 인재로 입사해 둔재로 직급이 오르는 이상한 시스템에 동화된다.

독해력 저하는 곧 노동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변화로부터 도태되게 만든다. 기업으로 보면 늘 외국의 선점 품목을 뛰 쫒는 형국인 이유다. 기술적으로는 금방 따라잡지만 고유의 정체성을 만들어내진 못해 아류에만 머물고 만다. 기술과 문화가 결합된 브랜드라 할 만한 것이 한국에는 별로 없다. ‘한국형 무엇 무엇’ 개발 같은 소리만 줄곧 하고 있을 따름이다. 노동성이 높은데 반해 의미 있는 생산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당장, 시스템을 뒤집을 수 없다면

미래 사회는 모든 요소가 융합되는 시대다. 시대를 읽는 능력은 글자 아닌 글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독해력에서 온다. 그것이 곧 이해와 사고 능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기계도 글자를 읽는다. 코드를 읽어 그대로 실행한다. 사람은 코드에 담긴 행동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다. 생각하는 역량을 기르지 못한다면 소모품인 기계와 다를 바 없어진다.

독해력 향상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다. 세대 갈등을 줄이고 정치 수준을 높여 사회 발전을 이룰 초석이 된다. 정부 차원에서 노력하고는 있지만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아직 한참 모자라다. 중앙정부 및 지자체를 포함해 ‘성인문해교육 프로그램 지원사업’ 예산이 60억 원 전후에 머무르고 있다. (2015년 기준 56억 원) 문해력 취약자 수에 균등 분배하면 1인 17만 원 정도인데 이걸로는 제대로 된 교육을 맛보기조차 어렵다.

무엇보다 교육 예산 증설만큼 노동 환경 개선에 발 벗고 나서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 근본적 해결책은 여기에 있다. 책 읽을 시간부터 확보해주어야 교육이나 캠페인도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오래 일 한다고 높은 능률이 보장되는 게 아니란 건 많은 사례와 연구를 통해 증명되어 왔다. 그걸 알면서도 기존에 뿌리내린 구태를 거둬내기가 어렵다. 대기업의 경우 더욱 시스템에 변화를 주기 부담스러워한다. 노동시간을 줄인다고 다 책을 읽는 건 아니겠지만, 책에 관심 돌릴 여유가 생겨난다. 직원들의 독해력 향상은 곧 업무 능력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요즘 스타트 업 등의 작은 사업자들 중 상당수가 이런 부분을 인지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시행해 나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측면이다.

 

일반 시민인 대다수 우리는 스스로 싸워나가야 한다. 개인 탓으로 돌리자는 말이 아니라, 그럼에도 그 빠듯하고 틈 없는 시간에 자꾸만 무언가를 읽으려 애써야 상황이 나아진다. 읽은 걸 곱씹고 가능하다면 짧게라도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써보면서 평생 동안 독해력 및 문해력을 강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퇴사 후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활용해 나갈 수 있다면 노후에도 왕성한 사회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 이해력이 떨어지는 대중을 달가워할 사람들은 욕심 많은 정치가들 뿐이다.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대중이야 말로 정부 입맛대로 요리하기 쉬운 대상이니까.

독서는 취미란에나 적는 소소한 행위가 아니다. 필사적으로 책을 읽어야 할 때다. 책 많이 읽으면 좋다고들 말하지만 왜 좋냐는 물음에는 다소 애매하게 답해왔다면, 이제 이렇게 대답해보자. 돈이 된다고. 독해력 향상은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혜안을 제공하고, 이는 곧 능력 향상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돈이 된다.

 

책을 읽으며 자꾸만 질문하자. 지금 글자만 보는 거 아니고, 글 읽고 있는 거 맞지? 착실하게 책만 읽어도 대한민국 2.4%의 귀한 인재가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데, 안 하면 손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