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은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하나의 덕목으로 상징된다. 꾸준함이 차이를 만든다는 광고 카피, 1만 시간의 법칙, 온갖 어학 관련 서적의 제목에 따라붙는 “꾸준한”이라는 수식어, 아르바이트나 재테크, 그리고 심지어 다이어트까지. 하나 하기도 벅찬 일들을 열댓 개나 감당해야 하는 작은 몸뚱어리에 그것들을 꾸준히 하기까지 해야 한다. 독서도 꾸준히 해야 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대여한 책이 집으로 배달되는 서비스를 이용하고, 영어도 꾸준히 해야 해서 “영유”, 영어 유치원에 들어가야 한다. 공부할 때에도 꾸준한 복습, 체력이 중요하다고 운동도 꾸준히, 그래도 살려면 숨도 꾸준히 쉬어야 한다. 세상 좋아졌다지만 암만해도 살기 힘든 곳에 떨어진 것 같다.

하기 싫다고, 정말로 그게 무슨 소용이냐 항변하고 싶지만, 과학적 근거도 있다고 한다. 특정 행위 혹은 사고를 자주 반복할 경우 뇌 신경이 연결되어 학습이 일어나고, 그것이 능률과 효율을 높이는 동인이 된다는 것이다. 꾸준함을 강요받는 게 가혹하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특정 업무에 숙련도가 높은 사람을 찾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도 프로필 가장 상단에 경력을 띄우지 않는가. 좋다, 꾸준함이 가져다주는 효과에 대해선 인정하기로 하자.

그래도 조금 찝찝하다. 아직 납득이 안 된다. 당장 실천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이거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만 해도 벅찬데 다른 걸 뭘 더 하라는 건지, 야속하기만 하다. 다양한 경험을 하라면서 또 동시에 한 우물만 파라 한다. 그래서 멘토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는 건 꾸준함을 밀쳐내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더니 그건 “새로운 도전의 꾸준함”이라고 한다. 억울한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조금 멋있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꾸준함을 탄소와 비슷한 성질로 정의하기로 했다. 어디에나 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당신이 무엇을 하든 그것은 꾸준함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어려운 게 쉬워지는 건 아니다. 저기 저 강 저기 저 산도 십 년이면 바뀐다는데 사람 꾸준하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체질이 아니다. 화학 공부만큼 어렵다.

내가 여태껏 꾸준히 해온 게 대체 뭐가 있나 생각해본다. 어떻게 공부 꾸준히 해서 어떻게 대학교 꾸준히 다니고, 어떻게 꾸준히 여태 잘 산 거 같다. 의외다. 꾸준히 사랑을 찾아 헤매었고, 꾸준히 적은 돈이라도 저축하고, 꾸준히 주변 사람 걱정하면서 그렇게 살았다. 꾸준히 부모님 생각하고, 꾸준히 새로 나온 영화 챙겨보고, 꾸준히 건강검진도 받고. 꾸준히 일하면서 살아가면서, 내가 여태껏 이렇게 잘 살았다. 신문에 날 만큼 나쁜 짓을 저지른 적도 없고 남들은 잘 모르지만 좋은 일도 가끔 한다. 누가 내게 뭐라 할 자격이 있나 싶고, 갑자기 억울하지만, 꽤 괜찮게 산 거 같다. 당신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