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아직 한참 어리기는 하지만, 아무튼 어린 시절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몇 가지 없었다. 일요일에 부모님이 소풍을 빙자하여 데리고 간 도서관에서 읽었던 그림이 8할 정도를 차지하는 책, 아버지가 어디선가 잔뜩 가져오신 영어나 한문 비디오를 보는 일 정도에다, 중고등 시절까지만 해도 네이버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의 스마트폰에서 정보를 얻는 것보다는 쉽지 않았다.

이제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말을 듣는 세상이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주위를 한 번 ‘스윽’ 둘러보면 죄다 스마트폰으로 뭘 그리 보는지, 아무튼 열심히 무언가를 보고있다. 거의 내리기 직전까지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리기 직전까지 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손에 스마트폰 대신에 책을 읽는 사람은 좀체 찾기가 힘들다.

스마트폰 덕에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 그렇게도 바쁜지, 오직 ‘결과’에 주목하기 바쁘다.

 

출판시장이 어렵다고들 말한다. 정말 어렵다. 사람들이 책을 안 본다. 아니, 사실 출판시장이 어렵고, 책을 보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긴 글’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포털에 실리는 기사들의 제목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내용은 별거 없는데 제목만 자극적인 것들이 다수다. 덕분에 사람들은 기사를 읽기보다, 제목만 보고 판단해버리고, 제목만 보고 댓글을 달기에 바쁘다. 그렇게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사실이 마치 사실처럼 세상에 퍼지기 시작한다.그리고 언론사를 포함한 다른 여러 매체들에서도 ‘카드 뉴스’라는 사진 하나에 짧은 한두 문장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트렌드다. 게다가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재미를 위주로 한 킬링 타임 용 글들에는 마지막에 ‘3줄 요약’같은 짧게 요약한 부분을 따로 써 놓기도 한다. 모두 현대인이 긴 글에 거부감이 많다는 방증이다.

 


책은, 기본적으로 ‘긴 글’이 주가 되는 콘텐츠다.
물론 그림이나 사진이 주가 되는 책들도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긴 글이 주가 된 것들이 많다. 그 ‘긴 글’들에도 종류가 대단히 많은데, 이를테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부터,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 혹은 여행, 과학, 역사 등 정보 전달을 위주로 하는 책들이 있다.다양한 장르의 책들 속에 들어있는 정보들은 ‘긴 글’로써 독자에게 전달 되는데, 카드 뉴스나 강렬한 기사 제목 등이 트렌드가 되어있는 현대 사회에서 사실 관심이 안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긴 글이라는 것에는 ‘길다’라는 사실에서부터 벌써 지루함을 느끼고,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빨리빨리’처럼 빨리 어떤 것을 처리하거나, ‘그래서 결론이 뭔데?’류의 결론부터 듣고자 하는 특성 같은 것도 있다. 그래서 책이 외면 받는 것일 수도 있으나,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면 원래 책에서 얻고자 했던 정보들보다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

현대인들이 사랑하는 영화에서도 그렇듯이, 책에 실리는 ‘긴 글’에도 기승전결이 있다. 서론으로 시작하는 글은, 결론을 향해서 차근차근 여러 단어들을 끼워 맞춰 나간다. 그 과정 가운데에서 우리는 결론만큼 거대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안타까운 것은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거나, 혹은 아예 모른다는 것이다.

축구에는 ‘빌드업(Build Up)’이라는 말이 있다. 유기적인 패스나 움직임을 통해 상대편의 골대까지 나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축구에서는 이 빌드업이 굉장히 중요하다. 빌드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앙 미드필더는, 사실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는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지만, 빌드업을 해주는 존재가 있음으로 인하여 경기를 잘 풀어 나갈 수 있고 그 결과로 골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얼마전 유행 했던 나노 블럭이나, 레고의 경우도 완성으로 가는 조립의 과정에서 재미를 얻기 때문에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그들이 완성품을 사지 않는 이유는, 이미 그 재미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당신이 생각지도 못 할만큼 많은 책들이 있지만,
그토록 많은 책들에는 당신이 생각지도 못 한 거대한 지식들이 잔뜩 담겨있다.


(C) Republic of Korea in Flickr

 

글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말 했듯이 ‘그래서 결론이 뭔데?’류의 자세로는 어떤 것을 배우고, 지식을 습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이유가 바로 글에서의 ‘빌드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작가가 결론을 말하기 까지 그 결론이 나오는 이유나 근거에 대해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 근거들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알짜배기 지식들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결론으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 있는 수많은 단어들과 문장들의 조합 사이에서, 내 입에서는 도무지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단어들을 발견함으로써 언젠가 활용 가능한, 즉 써 먹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둘 수도 있다. 나노 블럭에 매료된 이들처럼 책도 결과를 향해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만 알고 지나가면, 그 사이의 이토록 유용한 것들을 날려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책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 봄과 동시에, 그 사람의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고 정리하는 법도 자연스레 얻을 수 있게 한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삶을 정말 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또 다르게 보면, 스마트폰이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식의 총량은 단어 그대로 남들이 모르는 사실을 많이 아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어휘의 선택, 주장하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논리 등 기본적인 의사소통에서 사람이 더 고급스러워 지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계속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 사는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에서는, 기본적인 소통의 방식이 고급스러워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단순히 많이 아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을 남들이 알아듣기 쉽게 표현해 내는 것은 뇌가 섹시한 사람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사람 사는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고, 기본이다.

글. 성문경. 말은 이렇게 해도 아직 매우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
사진. dierk schaef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