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용어로 사용되는 ‘블랙 스완’

영화의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블랙 스완’은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백조는 이미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당연히 흰 색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1697년 호주에서 ‘흑조’가 나타난 것이다. 이후 2007년 금융위기 당시 뉴욕대학교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교수가 WALL가의 허상을 통렬히 파헤친 ‘블랙 스완’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이 이름은 경제 용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블랙 스완’에서 다시 파생된 용어로 ‘그레이 스완’이 있다. 이는 도저히 예측 불가한 블랙 스완과 달리 예측이 가능한 악재이지만, 마땅한 해결책이나 대응할 방법이 없는 시장 상태를 뜻한다.

새로움에 놀란 것이 아니라, 익숙함에 들어선 이질감이다

경제 용어로서의 의미는 차치해두고, 그 용어의 탄생에 초점을 맞추면, 당연히 블랙이라든가 그레이와 같은 색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필 용어의 이름이 그런 식인 것은 어디까지나 백조의 탓이다. 애초에 백조나 흑조가 별 차이 없이 흔히 발견되는 새였다면. 심지어 청조나 적조 따위의 컬러풀한 것들까지 활개를 치는 것이 이 세계의 상식이었다면. 흑조 한 마리의 등장은 전혀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물이나 한 모금 마실까’ 하며 별 생각 없이 수풀에서 모습을 드러낸 1687년 호주의 흑조가 ‘블랙 스완’ 이라는 이름으로 이토록 유명해진 이유는, 그 녀석이 까만 색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머지 모두가 흰 색이었기 때문이다.

정해진 사회의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태생이 흰 색인 백조를 나무라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블랙 스완이라는 용어의 탄생 배경을 보면서, 모두다 흰 색이기를 강요하는 사회의 시스템이 떠올랐을 뿐이다. 소설가 장강명의 <표백> 이라는 작품 속 문장처럼 정해진 사회의 과정과 답에 따라 개성을 표백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명문대를 가려는 10대들이 그렇고, 대기업에 취직하려는 20대들이 그렇다. ‘서른 즈음에’ 를 들으며 체념을 익히는 30대나, 돈과 생계가 전부인 40대 이후의 많은 중년들의 삶이, 또한 그렇다.

그리고 이러한 표백은, 개인의 의식이나 세대의 문화를 넘어 사회 구성의 원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업이라면 무릇 어떠해야 한다는 것. 청년들의 스타트업은 마땅히 창의적이기만 해야 하고, 취업을 목표로 하는 이들의 성공적인 자기소개서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것. 그렇게 다들, 제 안의 색을 빡빡 씻어 지워내며 희디 흰 존재, 한 마리 백조가 되어 간다.

색상을 지닌 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 때, 하필 표백을 거부한 누군가가 등장한다. 백조들은 그의 색상이 낯설고 두렵다. 저 반항과 도전의 색상은 어쩐지 위험하게 보인다. 비정상적이다. 비상식적이다. 표백되어야 할 것 같다. 사회의 원리와 질서를 어지럽히는 얼룩 같다. 기어코, 비난을 퍼붓는다. 그렇게 행동해선 안 된다고 훈계한다. 실패할 것이라 악담하고, 비웃는다.

그래서, 색상을 지닌 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누구나 자신의 색상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려줄 수 있다. 나이와 계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오직 자신으로서 드러낼 수 있음을 알려줘야 한다. 온갖 색상의 자들이 거리에 쏟아질 때, 비로소 당신이 당신답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