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고 하찮은 것을 이를 때 우리는 먼지를 떠올린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가벼운 티끌’을 이르는 말이면서, 또 하나의 사전적 의미로 ‘인간 사회의 타락상이나 추악한 측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뜻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설명에 고개를 갸우뚱 하지만 이내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없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도 그 어디에 있을, 나와 함께 하고 있을, 켜켜이 쌓이고 있을 먼지에 대한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오늘, 집안 청소를 하면서였다.

난 매우 건강한 편이어서 가리는 것이 없을 정도로 잘 먹고, 병원 신세를 오래 져본 적도 없다. 알레르기 또한 거의 없는 편인데 나이가 들어 어느새 부턴가 먼지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쯤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콧물의 흐름과 수차례 연이어지는 재채기가 그 증상이다. 처음엔 뭣도 몰라 답답했지만, 집안 청소를 하거나 옷을 털어 그 먼지를 잘못 들여 마셨을 때 그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먼지, 그 의외의 심오함과 무거움


먼지는 그리 긍정적인 존재가 아니다. 앞서 살펴본 사전적 의미도 그렇고, 하찮음을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심오함을 표현할 때도 있다. 우리네 사람을 표현할 때 ‘우주의 먼지’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세상 걱정 그리 많냐는, 그저 우주의 먼지 일 뿐인데 그리 힘들어하지 말라는 말이 모처럼 위로가 된다. 존재를 하찮게 여김으로써, 그 하찮은 존재가 하는 걱정은 더욱더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힘이다. 더불어,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사람들은 ‘무(無)’로 돌아간다고 여긴다.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우리네 육체에 빗댄 말이다. 화장을 하고 난 후 뼛가루를 뿌리는 그 모습도 먼지가 날리는 모습과 상통한다. 먼지의 심오함이 의외로 무겁다.

먼지와의 조우, 그리고 우리


먼지라는 존재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곧 집안을 청소해야 할 때를 이르기도 한다. 한쪽 구석에 켜켜이 쌓인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청소기를 집어 든다. 사라지는 먼지를 바라보며 무언지 모를 쾌감 아닌 쾌감을 느낀다. 더불어, 이 많은 것이 대체 어디서 왔을까를 생각한다. 누가 보낸 것일까. 내가 만든 것일까.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가. 가만, 생각해보니 스스로도 이러한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사람은 누가 보냈고, 만들었으며 왜 존재하는가. 우리의 인생이 ‘먼지’같고 부질없음이 갑자기 이해되는 순간이다. 먼지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느끼는 쾌감은 무언가 깨끗해진다는 것에 대한 반응이다. 그렇다면, 먼지인 우리가 사라지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쾌감일까? 아니면 그것마저 우리가 느끼게 될 숙명일까.


어느 주말 아침. 피곤에 절여진 몸이 평소의 출근 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일어나지 못했던 그때. 간신히 눈을 떠 바라본 그때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셨고, 먼지는 유유히 떠다녔다. 빛과 어둠의 경계를 두둥실 떠다니는 그 먼지들은, 유독 햇살이 가득한 곳에서 더 잘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이 찬란했다. 눈이 부셔 찌푸린 가느다란 눈이 보았던 그 먼지의 유유함과 둥실함은 나에게 시간을 멈추라고 하는 듯했다. 청소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때 바라 본 그 ‘먼지’는 나에겐 어찌 보면 순간의 ‘영원’이었는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재밌기도 하다. ‘먼지’ 때문에 먹고사는 사람들도 있다. 모기약과 바퀴벌레 약을 만들어내는 회사와 그 직원들이, 모기와 바퀴벌레 때문에 먹고사는 것처럼. 먼지와 관련된 수많은 제품들. 청소기, 공기 청정기, 총채와 갖가지 먼지 제거 도구들. 요즘은 어느 나라에서 불어오는 ‘먼지’보다 낭만이 없는 ‘미세먼지’로 골머리를 썩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진 마주하는 먼지가 때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일지 모른다. 먼지에 반응하게 된 것은. 먼지에 반응하여 먼지의 의미를 떠올리고, 존재의 이유를 생각하고 곱씹는 것.  그 많은 먼지는 어디에서 왔고, 나는 어디로 갈 것이며, 그 먼지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인생의 허망함을 표현하기도, 우리가 가진 근심과 걱정은 물론 우리가 가진 재물과 명예도 한낱 먼지와 같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속삭이는 먼지의 무게가 심상치 않다. 켜켜이 쌓여가는 먼지가 시간을 대변하듯이, 우리네 인생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어쩌면 먼지가 되어가는지 모르겠다.


살아가다 느끼는 존재의 하찮음이, 먼지를 닮아서일까.

먼지의 무게가 그리 가볍지 않다는 것은 우리네 인생의 무게를 대변하는 것일까.

먼지 때문에 흘린 콧물과 영 성가신 재채기가 내 삶을 일깨우며,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밤이다. 하찮음에 느껴지는 그 무거움이, 존재의 의미가 낯설지 않은 채로. 나중에 먼지가 되어보면 알 것이다. 그 많은 먼지가 어디에서 오는지,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먼지와 우리는 왜 살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