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말이있다. 한 사장님이 저녁 식사자리에서 한 말인데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잘나지 않는다.

약간의 취기가 돈 목소리가 더 진득하게 이야기의 양념을 치는 밤이었다. 한국과 일본이 한창 독도문제로 싸우던 때였다. 저마다의 갑론을박이 깨가 쏟아지듯 테이블위에 낭자했다. 내 옆에 있던 분이 말문을 열었다.

“선동렬 선수가 그랬데요”

“뭐가요?”

“기자가 물었다네요. 좀 개구졌던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갑자기 선동렬에게 한국과 일본중에 어디를 응원하냐고 딱 이렇게 물어본거에요”

사실 그는 한국의 대표투수였지만, 일본야구계에서도 썬(sun)으로 존경받는 존재였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를 응원한다고 하기에도 쉽지 않는 상황이었다. 궁금했다.

“답은요?”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분이 미소를 지으며 마치 썬이 된 듯 답했다.

“저는 야구를 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밤은 그렇게 끝났다.

나는 그 말을 어디 기록하지도 않았고 딴 자리에서 써먹은 기억도 없다. 어느 날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선장의 모습이 보였다. 비참한 장면들이 연신 화면을 메웠다. 선장은 재판도 받고 이러저리 끌려다녔다. 그때였다. TV를 보던 나의 머리속에 이 말이 다시 살아났다.

“야구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젠장, 내가 보는 TV안에는 선동렬이 없었다. 항해사는 운항을 잘하지 않았고, 선장은 탈출 방송을 하지 않았고, 해경은 구조를 잘하지 않았고, 청와대는 지휘를 잘하지 않았다. 청와대에 원했던 것이 잠수를 하고 아이들을 구해오라는 것이 아니었다. 선장에게 아이들을 붙잡고 몇킬로를 헤엄치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들은 그들이 해야하는 그것만 잘하면 됐다. 선동렬이 야구만 잘하듯.

 

 

1910년 ‘6호 잠수정’이라는 이름의 일본의 한 잠수함이 침몰했다.

일본 전역이 침통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잠수정을 건져올려 뚜껑을 열어본 사람들이 할말을 잊었다. 숨진 전 대원이 제자리에 있었던 거다. 잠수정의 함장은 자기자리에서 물이 들어올 때 시각별로 일지를 써놓았고 (일지는 함장의 가장 중요한 업무중의 하나다), 조타수는 조타자리에, 대원들은 자신의 자리에 다 그냥 앉아있었다. 당연히 살아남으려도 입구에 엉켜 아비규환이 되어 있을거라 생각했던 외신이 대서 특필했다.

‘이것이 일본의 힘이다’ 그들은 단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었던 것 뿐인데 주변국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한국에는 그런 사례가 없을까? 당연히 있다. 그것도 최근의 일이다. 온 국민이 패닉에 빠졌던 메르스 사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때 가장 많은 ‘선동렬’을 보았다. 초기 메르스 확진 인원 186명중 무려 21%인 39명이 치료를 담당하던 의료진이었다. 밀려드는 메르스 환자로 진료일선이 초토화되는데도 의료진들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이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발열환자를 격리수용하는 병원이 절실했다. 어떻게 병원은 정했지만 뒷일이 걱정이었다. 지정병원은 인구 밀집 지역에 있어 격렬한 반대가 불보듯 뻔했다.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공무원들이 병원앞에 가보니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쓴 플랭카드가 이렇게 휘날리고 있었던 거다.

“힘내세요 의료인 여러분, 우리가 늘 함께합니다.”

“진정 당신이 애국자입니다. 사랑합니다.”

고군분투하며 자리를 지켜내는 의료진 앞에 주민들이 보낸 경의였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다보면 왠지 뒤가 캥긴다. 나는 내가 할 걸 잘하고 있나?

옆사람 참견한다고, 먼 나라 일에 한눈판다고, 연예기사, 스포츠 동영상 보느라 시간다보내고, 진짜 내가 해야할 거 제대로 하고있나?

모든 일은 돌아돌아 나에게 묻게 된다. 지금은 새벽이다. 그래서 부엌으로 갔다. 새벽에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현미밥 짓는 일이다. 나는 우리집에서 아침 당번이다. 내가 이걸 안하면 가족들은 일터에, 학교에 못간다. 오늘 새벽 선동렬은 현.미.밥을 지었다.